나의 삶 나의 행복-봉사인생 40년 (24)
상태바
나의 삶 나의 행복-봉사인생 40년 (24)
  • .
  • 승인 2004.05.07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청수 교무
요즈음 델리 날씨는 섭씨 38도까지 치솟아 몹시 덥다고 한다. 이처럼 인도는 사철 더운 나라다. 그러나 유독 하늘 높이 솟은 라다크만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세계에서 시베리아 다음으로 추운 곳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그들이 기른 가축의 털을 깎아 천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고 산다. 히말라야 라다크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어서 얼굴도 닮았고 체구도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가 보내는 옷이 그들에게는 맞춤옷처럼 잘 맞을 것 같았다.
숙명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동정심과 소녀들의 예쁜 마음으로 모아온 5000여점의 옷은 모두 좋아 보였다. 나의 눈짐작으로는 그렇게 많은 옷도 한 컨테이너 분량은 돼 보이지 않았다. 헌옷을 모으는 일은 돈을 모으는 것과 달라서 뜻있는 몇몇 사람이 더 많은 옷을 내놓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한 컨테이너를 채우려면 참으로 수많은 사람이 뜻을 함께하며 거들어야만 되는 일이었다. 또 어디에선가 더 많은 옷을 모아야만 한 컨테이너를 채워 설산에 옷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을 하다가 김몽은 신부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치성당은 신자 수도 많다고 알려졌고 주임 신부인 김 신부님과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좀 다급해진 나는 대치성당을 방문해 김몽은 신부에게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에게 ‘겨울 옷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와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했다. 그리고 이 운동에 동참을 호소했다. 나의 말을 다 듣고 난 신부님은 “그렇게 큰일을 어떻게 혼자 하십니까? 함께 합시다…”라고 했다.
신부님의 “함께 합시다”란 말을 들었을 때는, 이제 이 일은 되는 일이구나 하는 확신과 함께 새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지난 30년 가까이 가톨릭 복지시설인 성라자로마을 한센병(나병)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내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옷을 모으던 때는 가톨릭을 내 집처럼 드나든 지 20년쯤 되던 때였는데 이번엔 김 신부님이 내가 하는 일을 기꺼이 동참하겠다니 그야말로 인류공동선을 위해 진정한 종교협력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옷 모으는 일말고도 큰 의미가 실현되는 것 같았다.
김 신부님은 겨울 옷 보내기 운동에 관하여 몇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포스터를 제작하여 원불교에도 붙이고 천주교에도 붙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운동을 알리자고 했다. 그리고 가톨릭신문에도 광고를 내고 기사로 보도하여 대치성당뿐 아니라 많은 천주교인들이 동참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당장 그 자리에서 가톨릭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이윤자 국장과 통화를 하고 인터뷰 약속 시간을 정했다.
설산 사람들에게 보낼 옷을 모으는 일로 내가 너무 노심초사하는 듯이 보였던지 김 신부님은 잘 안될 경우에는 또 아무개의 협조를 받을 수도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에게 옷을 보내는 본부는 원불교 강남교당이지만 그 지부라 할 수 있는 대치성당엔 더 많은 옷이 산더미처럼 모아지기 시작했다. 김 신부님께서 이 일이 잘되도록 앞장서고 있지만 옷을 정리하여 상자에 담는 일은 김 스콜라스티카 수녀님이 담당하고 있었다. 수녀님은 조용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하고 너그러워서 그 많고 힘든 일을 정말 기쁘게 협력해 주었다. 주체할 수 없이 너무 많은 옷이 쌓여서 천주교 신자들끼리는 그 옷을 다 정리하기 어려워 우리 교도님들도 성당에 가서 가톨릭 신자들과 자연스럽게 일손을 맞잡고 포장작업을 했었다. 멀고먼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을 돕기 위해 두 종교가 힘을 모아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이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