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택 교구장의 교리로 풀어본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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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택 교구장의 교리로 풀어본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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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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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는 차에서 무슨 감사
금강합창단 정기연주회에 수도원 원로 교무님들이 자리를 함께 해 주셨다. 연주회를 마치고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경치 좋은 토마토밸리에서 개봉교당 김수공 교도의 공양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저녁 8시경 서울로 향했다. 일생을 이 공부 이 사업에 전념하신 선진님들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드렸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을 안고 차에 올랐다.
출발 20여분 지날 때 쯤, 도로가 온통 자동차의 빨간 불빛으로 뒤덮이며 차 간격이 서서히 좁아지는 것이 아닌가? 차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편 차들은 씽! 씽! 신나게 달려가는데 우리 차선은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어둠이 짙게 깔린 도로에서 차속에 갇힌 나는 ‘오늘 저녁 과연 서울에 도착할 수는 있을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울에 살다보면 차가 밀린다는 것은 다반사이다. 출퇴근 시간만이 아닌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무작위로 차가 밀릴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내가 움직일 때도 밀리고, 내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서울의 도로는 밀리고 있다. 도로에 차가 밀린다는 것이 이제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서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시간대가 덜 막힐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의식이 이제 우리에게 일상화 되어 있다.
도로에 밀리는 차! 이것은 산업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선물이다. 산업사회는 공장을 짓고 기업을 하기 위해 적합한 조건을 갖춘 도시를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도시 집중화라는 현상을 초래 하였다. 인구의 도시 집중은 사람 생활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고 그 중에서도 도로 교통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하나의 문제로 등장하였다. 차가 밀리는 도로를 만든 또 하나 요인은 기술 발달로 인한 자동차 생산의 가속화이다. 여기에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자동차라는 귀중품이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보편화되었다.
나는 평소에 ‘나만이라도 승용차를 가지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은근히 해오고 있었다. 그것은 도로 교통 혼잡에 나 하나라도 부담을 덜어야 하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밀리는 도로 경계를 당하면 그 대처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무슨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차를 몰고 나온단 말인가!’ 이런 짜증 섞인 마음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만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차가 밀리면 각자 처지 따라서 마음 작용과 생각들이 달라진다. 느긋함에서 조급함에 이르기까지 더욱 나아가서는 신경질적 반응으로 서로 상처를 주곤 한다.
우리 원불교인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밀리는 도로에서의 마음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상태와 일의 경우를 따라 마음이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차가 밀리면 우선 마음이 답답해진다. 반대로 길이 뻥 뚫리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 상태이다. 여기에서 우리 원불교인은 한 단계 성숙할 필요가 있다. 차가 밀려도 감사하고 길이 뻥 뚫리면 더욱 감사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상대방도 밀린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로가 꽉 막히는 것은 나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 이럴땐 결코 원망심이 생길 수 없다. 그리고 차를 타고 함께 달리고 있는 사람들 모두 동포들이다. 동포는 천지은과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로운 존재다. 이것을 우리는 동포은이라고 하지 않는가? 밀리는 차속에서도 서로 동포임을 느낄때 진정한 감사심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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