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신 교무가 들려주는 산속 이야기
상태바
정인신 교무가 들려주는 산속 이야기
  • .
  • 승인 2005.01.07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벽기도
을유년 새 아침 어둠을 안고 길을 나섰습니다. 두터운 겉옷에 모자·장갑·목도리로 완전무장을 하고 기도로 꿈을 이루는 신령스런 땅 축령산 정상을 향했습니다.
새벽 5시 30분, 산 아래 저쪽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차들이 줄지어 올라갑니다. 아마,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주차장에 차를 놓고 나오는 사람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길 건너까지 메아리쳐 옵니다.
동짓달(음력) 스무하루 달빛과 별빛은 은은하게 내려와 산길을 걷는데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마른 풀섶은 은빛으로 반짝이는데 아침이슬인지 총총히 나온 별빛의 반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뚜벅뚜벅 오르는 길에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고 차가운 기운에 얼굴이 시렸지만 이 아름다운 새벽에 깨어 있음이 행복했습니다.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의 뜻을 궁글려 보기도 했지요.
897m의 정상, 그 곳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붉게 물들어가는 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산은 서로 비켜서서 가슴을 열고 우리들을 맞이했어요. 그 너른 품이 무척이나 편안했습니다. 산에 올라 처음으로 해맞이를 하는 저는 설레임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호흡을 고르고 영주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위쪽에서 기도를 시작한다고 누가 큰소리로 외칩니다. 성큼 올라가 보니 이미 기도가 시작되었더군요. “새로 시작하는 을유년 새해에도 수동면과 이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살펴주십시오.…”
과일과 떡 시루 앞에 기도비를 놓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 ‘새해 첫 새벽에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 이처럼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한해를 시작하는 그들의 삶은 분명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요?’ 줄지어 기도하는 사이 해가 솟아올랐습니다.
“와!” 하는 탄성 속에 햇님은 눈부시도록 찬란했습니다. 산능선을 둘러친 회색과 청빛의 구름, 그 위로 붉은 여명이 길게 띠를 두르고 햇님을 맞이했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