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의 선도자-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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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의 선도자-윤광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2.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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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훈의 품안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


“대종사님 법 만나 48년 동안 일원회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행운이다. 법복, 스승복, 인연복이 많은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입교 후, 48년간의 원불교 역사를 온 몸 가득 짊어지고 있는 영동교당 윤광준 교도. 그는 하루하루 수도인의 일과를 실천하고 법문과 명언을 가까이 하며 연마한다. 대산종사, 좌산상사, 경산종법사의 법문이 늘 그의 곁에 머물며 행동과 공부의 표준이 되고 있다. 그는 현재 8년 째, 원광장애인 종합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며 장애인들의 재활과 자립, 평등구현, 행복추구를 위해 원불교의 은혜사상을 실천하며 봉공사업에 힘쓰고 있다. 영동교당 부회장 15년, 회장 13년, 중앙청운회 사무총장과 부회장, 연화촌회(전주교당 학생회 동문모임)회장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의 원불교와의 인연은 4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일상수행요법에 매료 원기 44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선배의 권유로 전주교당 학생회 교리강습에 참여한 후 그는 ‘일상수행의 요법’에 매료당한다. “입교 1년 후에 당시 중앙선원장이었던 대산종사님을 뵙고,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느냐’ 여쭈었더니 ‘일상수행의 요법대로 살면 잘 살 수 있다. 그대로만 살아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 후 그는 지금껏 자신이 구도자요, 수행자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자신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서울교당 교우회에서 활동하며, 원불교 청년회 출범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원기 45년 신정절에는 총부에서 정산종사님께 세배를 드렸고, 그 다음해에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계신 정산종사님을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발인식 때는 총부에서 심부름을 했고, 그 뒤 총부의 큰 행사에 빠지지 않고 주인으로 참석했다. 어른들께 귀여움을 받으며 총부를 내 집 드나들 듯 했다.”


# 교법 사회구현에 앞장 스승님들 뵌 것이 엊그제 같다며 그는 선진 스승님들과의 귀중한 만남을 아련히 회상한다. 사심없이 학생회, 청년회에서 열심히 활동한 댓가일까? 그는 전주교당 학생회에서 알게 된 법우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운까지 누리게 되었다. 청운회 사무총장을 할 때 ‘보은 동산’을 만들어 청운회 방향에 큰 기여를 한 그는 현재 청운회 자문위원으로, 그의 아내(장 법운 교도)는 영동교당 봉공회장으로 활동하며 ‘재가로서 모범적으로 살리라’는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아직도 해맑은 하늘사람의 미소를 간직하며 교법의 사회구현에 앞장서서 사회인의 모범이 되고 있는 윤 교도. 그는 “원기 100년 안에 입교한 교도들은 대종사님과 특별한 인연이다. 재가교도는 우리 교법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 작업취사와 주의, 조행 공부에 힘써야 하고 봉공생활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후진들에게 애정 어린 당부를 잊지 않는다. 박혜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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