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진급하는 양주교당 김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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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진급하는 양주교당 김지인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3.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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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불교는 좋은 인연을 만나는 곳


“원불교 인연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원불교와의 관계는 상생 상화의 관계였고, 상부상조하는 좋은 인연들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허정지 교무님(동마산교당)과의 상생의 관계는 나를 선인선과의 세계, 진급의 세계에서 살게 했습니다.”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시댁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일원상 서원문을 30번 독하면서 원불교 정신을 놓지 않고 “내 마음만 참으면 모두가 조용해진다. 선연도 악연도 내가 만든 것이다” 는 생각을 하면서 오롯한 마음으로 기도생활 했다는 김지인 교도.


“사은님께 기도는 생활이었습니다. 힘들 때 하소연도 하고 기쁠 때는 감사도 드리고…. 또 항상 친구처럼 대화를 하는 허정지 교무님은 나의 연원이자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며 허정지 교무님과 자상한 소이근 교무님 등 원불교 인연들 덕분으로 결혼 6년 만에 아들 쌍둥이 낳아 원불교 안에서 잘 기르고 있고, 특히 원불교 안 다녔던 남편 (박경원)이 든든한 법동지 되어 마음공부 함께하고 있어 감사하고 든든하다고.


# 오빠를 위해 기도 입교 후 20여 년을 법테두리에서 벗어난 적 없다는 그녀와 원불교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 기장교당에서다. “오빠가 사고로 열반해 기장교당에서 49재 지낼 때 처음 원불교를 접했습니다. 오빠는 기장교당 학생회, 청년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사고로 열반했습니다. 그 후부터 우리가족들은 원불교라면 담을 쌓고 지냈지요.”


“원불교와 인연을 끊고 지내던 중, 고2때 지리 선생님께서 기장교당에서 오빠의 활동이 대단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생각했지요. 오빠를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하면 우리 집안이 편안해지고 오빠도 편안하게 극락왕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기장교당(원기87년)을 찾아갔지요. 그곳에서 허정지 교무님을 만나 마음수양하면서 학생회, 청년회, 유치부(꿈밭회장)를 만들고, 밤 세워 교리퀴즈대회준비, 훈련참여, 교무님과의 2년간의 교당생활 등? 재미있게 교당 활성화를 위해 솔선했다”며 옛 기억을 더듬으며 자랑한다.


# 양주교당의 첫 주인 결혼 후 서울로 올라와 강남교당, 동두천교당을 걸쳐 양주교당에서 정착하게 되었다는 김교도. 8년 전 양주교당 봉불식 때 피아노반주 도와주러 왔다가 지금까지 피아노 봉공과 원광어린이집 피아노 교사, 화목단 중앙으로 양주교당 첫 법회 주인공이자 굳건한 교도가 되었다.


남편 직장이 서울 동작 이수인데도 양주교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그녀는 “양주는 지역상 유동인구가 많아 교화하기도 힘든데다 그동안 교무님들이 자주 바뀌어서 어린이집 자모들과 선생님들이 혼란스러워했고 참 힘들었다.”며 정대래 교무님은 양주지역교화를 위해 오래 계시길 원하기도. ?8


년 동안 양주교당을 지켜 온 그녀를 정대래 교무는“어린이집 자모들과 늘 스스럼없이 지내며 교화를 위해 늘 모범을 보이고 있어 양주교당의 보물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김해인 기자 kms@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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