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소리여 ,이제 깨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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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소리여 ,이제 깨어나거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3.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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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불교 음악문화을 위해 최선
삼월의 때아닌 거센 바람과 눈발이 몰아치던 아침, 나는 총부를 찾아가야 했다. 크신 어르신을 찾아 문안드리며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의 보고도 올리며 여러가지 문화행사준비 관계로 가는 길이였지만 늘 총부를 갈때면 나는 알수없는 찡한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다. 우리들의 선진님들께서 일궈 놓으신 지금의 총부, 그 분들의 영육쌍전 과정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쩌면 그것은 처절한 노동과 희사, 그리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는 고독한 창업자로써의 헌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요즈음은 나는 다시금 나를 조여가며 새로운 작업들을 하고 있다. 일원의 사상에 합한 본래의 소리와 음악의 형태를 찾아서 세상의 모든 악기이던 관념의 소리이던 내면의 소리이던간에 오행과 음양의 철학으로 그것들을 나누고 검증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것이다. 이제 이것이 완성된다면 비로소 일원사상의 명상음악과 미래의 원불교음악을 열수 있는 든든한 열쇠를 얻게 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원불교성가, 법회때에 독경이나 염불들이 일원문화의 창조적 발전과 보급이라고 믿는다. 문화의 소리없는 침투는 세인들로 하여금 그 종교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며 그 의식의 거부감에서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친해지게까지도 한다. 동서양의 음악과 소위 제3세계의 음악, 그리고 우주와 관념의 음악을 하나로 묶으며 “일원의 사상에 가장 근접한 음악은 과연 어떠한 소리이며 형태여야 할까” 요즈음 이것이 나의 스물네시간 화두이다. 어떨땐 꿈에서 그것이 들리고 보이기도 했지만 깨고 난후엔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맨 처음 원불교 명상음악을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을때에 그땐 정말이지 모든게 아득하기만 했고 희미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뿌옇기만 하던 그것들이 서서히 안개가 걷혀가듯 그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고나 할까? 그러니 더더욱 기운을 받아 박차를 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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