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살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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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 살아가는 길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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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의 교역자를 만나다 ... 원남교당 김성하 교도


“네 말이 맞다.” 이 한마디로 그 동안 전무출신 삶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의 결심들이 제 자리를 찾았다. 고3 신성회에서 빨개진 얼굴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좌산상사님께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때 좌산상사님은 이 한마디로 그녀의 결심을 믿어 주셨다. 2년여의 원남교당 간사생활을 마치고, 내년 원불교학과에 입학하는 김선하 간사, 그녀의 시작을 들어보았다.



# 나로 시작해


처음 서울에서 간사생활을 시작 했을 때, 그녀의 별명은 함흥차사였다. 밖으로 심부름을 보내면,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부름을 나가, 서울의 화려한 외경에 이끌려 구경하다보면 돌아갈 시간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과 사를 구별해 외경에 끌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은, 자신을 없애는 간사생활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간사 1년차 때 많은 방황과 외 경에 이끌렸던 것은 나를 버리지 못하고, 내 것을 챙기려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화려함에 이끌렸던 것도 내 것으로 만들려 했던 욕심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그녀는 2년여의 간사생활이 20년여 동안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20년 동안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성찰의 시간이었다고.


“간사생활을 하면서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모습으로, 다만 내가 무심코 스쳐 보냈던 ‘나의 습관’이었습니다.”


스쳐 보냈던 자신을 되집어보았기 때문에 20년간 “내가 몰랐던 나를 버릴 수 있었다”는 그녀, 본인 스스로 “자갈밭에서 고운 모래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을 발하는 교무가 되어라”고 말하신 황대원 교무님의 뜻에는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는 그녀이다.



# 우리로 만나다 그


녀는 본인 자신이 원남교당의 사고뭉치였다고 말한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잔디를 풀로 착각해 죄다 뽑아 놔서 다시 심어야 했던 일, 교무님 물건, 교당 물건 할 것 없이 손에만 닿으면 고장이 나고 부서졌던 일까지, 오죽했으면 교무님이 그녀의 손을 위해 독경을 해주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탓하며, 자신의 부족함에 마음을 상해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교무님이 대포용력 설법을 마치시고 그녀에게 “네 스스로가 떠나지 않는 이상 널 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해주셨다. 또한 “자신을 탓하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며 실수투성이였던 그녀를 커다란 포옹력으로 감싸 주셨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을 시험했던 2년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스스로 주춧돌을 다져갔던 그녀도 ‘교무님과 헤어져 아쉽겠어요’라는 얘기에 눈이 빨개지는 아직 21살의 여린 소녀이다.


“원남교당에서의 간사생활은 산 경전 속에서 인생의 주춧돌을 튼튼하게 만드는 시기였습니다. 원불교를 만난 것도, 원남교당과 그 속에서 만난 인연들들 모두 앞으로 좋은 집을 짓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배운 것에 어긋나지 않는, 자기와의 약속을 꼭 지키는, 그래서 타인의 약속도 지킬 수 있는 교역자가 되겠습니다. ”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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