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속에 만난 법신불 사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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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 만난 법신불 사은님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1.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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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바꾼 ... 신림교당 김원숙 교도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했던 그 때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김원숙 교도. 물질적 부족함이 비로소 자신 안에서 사은님을 만나게 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강한 어머니로 태어나게 했다고 말한다.




# 어머니의 이름으로


김 교도를 교당으로 이끈 것은 원불교 학생연합회장이었던 셋째 아들이었지만, 교당에 뿌리내리게 했던 것은 인생의 좌절감이었다. 지방유지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녀가 남편의 사업실패로 화장품 판매에서 야쿠르트 배달까지 하면서 맛보았던 것은 친구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수치심도, 남편에 대한 원망심도 아니었다.


“바로 저였지요. 절에서 500배를 해도, 1000배를 해도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제 마음이 그저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그 때 다시한번 교당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설득한 것이 셋째 아들이었다. 처음 교당에 나가 들은 설법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두 번째 설법도 ‘괜찮다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속삭임 같았다. 물론 교무님이 당시의 김 교도의 상황을 알았을 리도, 많은 대중 속에 자신을 향한 설법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도는 아니었다.


“모두 제 이야기 같았지요. 그리고 집에 와 잠도 자지 않고 교전을 읽었습니다. 삼학팔조가 무언지 사은사요가 무언지 취사가 무언지 읽고 또 읽었지요.”


그러면서 지금 현재의 실패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생의 빚을 이제 갚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다음 생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아야 할 업보라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 때보다 강해졌습니다. 4형제의 강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나를 추슬러 잡고 집안을 이끄신 사은님의 덕이었지요.”


그렇게 대종사님과 인연을 맺고 신림교당에 출석한지 21년, 그 사이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아이들은 장성해 아버지가 되었고 신림교당에서 신심을 챙기는 일원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김 교도, 어쩌면 좌절을 감사로 돌려 집안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의 복이 아닐까.




# 천지만물의 기쁨


김 교도는 4형제를 키우기 위해 7년간의 간병인 생활을 했다. 뇌졸중으로 거동인 불편한 어른부터 몸을 일체 움직이지 못하는 어른까지 돌보며 김 교도의 몸도 많이 망가진 세월이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불편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편하게 살아온 세월의 보답이라 생각했기에.


“나의 곁에는 늘 대종사님과 사은님께서 지켜 주시고 힘 밀어 주시기에 일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오히려 극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까지 살려고 노력하는 그 분들을 보며 ‘나는 그 때 어떻게 살았던가’하는 생각에 눈물지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했던 그 때라면 몰랐을 가르침이었다.


“일주일을 보내고 토요일에 병원을 나설 때면 천지만물이 다 내 세상인 것 같아 사은님께 기도했습니다.”


‘부족함을 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사은님을 놓았다면 얻을 수 있는 행복일까?’ 지금도 생각한다는 김 교도, 다시한번 세상의 여러 가지 기쁨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한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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