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감상 /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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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감상 / 김세진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8.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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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산성지의 여름농활

항상 시골에서 와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맨날 같은 곳에 같은 일상을 가지고 있는 서울을 벗어나서 좋았다. 여기선 지하철이 없어서 뛸 필요도 없고 약속도 없어서 느긋하게 있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다만, 여름이라 너무 더운 것만이 싫었다. 잠을 못잔 것도 싫었다.


첫째 날 밤엔 다음 날을 준비하고, 둘째 날 밤엔 셋째 날을 준비하고, 셋째 날엔 노는 것도 좋았지만 다리가 아팠다. 다른 사람들은 쉴 때 프로그램 준비하면서 피곤했던 게 버거웠다.


둘째 날은 피를 뽑으면서 피랑 벼를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내가 농사에 대한 전문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피는 마디가 존재하며 열과 행에서 벗어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풀끝만 보고서 피인 줄은 잘 모르겠다. 벼와 피의 틀린 그림찾기에 좀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작업이 피뽑기임엔 틀림없다.


실잠자리랑 방아깨비랑 무당벌레랑 여치랑 사마귀를 보았는데 서울은 풀조차도 오염되어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밥과 밥 사이에 새참이 두 번 왔다. 우와웅~!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를 정말 국물 한입 안남기고 다 먹었다. 콩국이 정말 제대로 된 콩이다. 교무님께 감사드린다.


저녁엔 레크리에이션과 담력테스트가 있었다. 우리 임원단이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긴장되었다. 게임을 하고서 포크댄스를 추었다. 논일하느라 피곤했을텐데 사람들은 아주 신나했다. 나도 덩달아 흥이났다. 사람은 웃을 때 제일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을 그들을 지켜보면서 느꼈다.


담력테스트는 내가 놀라고 싶었지만 난 사람들을 놀래켜 주어야 해서 네 봉분이 있는 무덤옆에 서있었다. 아무도 날보고 놀라지 않았다. 이쯤이면 세진언니가 나올 거야 하는 말이 들리고 난 뜨끔했었다. 슬펐다. 오히려 나 혼자 담력테스트를 한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들이 나에게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별바다에 빠진다는게 이런 의미구나. 아차 하는 순간에 떨어진 별똥별에 난 두손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갑자기 내게 소원을 물었을 때 바로 말할 수 있을만큼 간절한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셋째 날은 성지순례를 하고서 바다에 갔다. 대각터와 탄생가와 구간도실을 둘러보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문득 가슴이 아련해졌다. 십년 전에도 이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었다. 지금은 나 혼자 왔지만, 언제 다시 한번 우리가족 모두가 여기 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빠르다. 언젠간 지금 나의 고민들도 추억이 될 때가 오겠지. 갯벌의 머드팩은 오직 서해안의 별미다. 피부가 좀더 미끈해지라구 온몸에 갯벌을 바르고서 굳기만을 기다렸었다. 온갖 미생물의 보고라 상처가 나도 자동 소독이 된다고 형진 교무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멀리 빠져 나가는 바닷물을 붙잡고 싶었다. 더 놀고 싶어서.


밤의 법어봉독은 재밌었다. 보통 엠티를 오면 술과 과자로 수다를 시작했겠지만 기도터에서 돌아가면서 교전을 함께 읽으면서 자연과 삼밭재와 내가 하나됨을 느꼈다. 졸려서 꿈뻑하려는 순간, 복숭아 하나에 힘이 불쑥 났다. 그리고 읽어보면서 익숙한 내용이 있어서 반가웠고 맘에 드는 법어도 찾았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유무념이 중요하다 한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보냈던 농활 시간들을 다음에 언젠가 만나서는 추억 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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