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에 편안한 사람이 가장 큰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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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에 편안한 사람이 가장 큰 부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3.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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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절을 은혜의 집에서 보내는 ... 강남교당 김덕은 교도



“교무님들은 대종사님을 대신하는 분들이라 시키시는 일은 거절을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한울안신문 인터뷰는 사양하고 싶습니다. 저는 남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지 못했거든요.”


내세울 것이 없어 부끄럽다고 손사래 치는 겸손 뒤에 강남교당 김덕은 교도는 원음합창단 창립멤버, 서울구치소 교정위원 등 화려한 경력을 숨기고 있었다.



# 교정교화와의 인연


김 교도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주 목요일은 서울구치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과 같이 법회를 본다.


“재소자들에게 원불교를 알리고, 지금은 비록 갇혀있지만 앞으로는 세상에 유익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기도드리는 그 시간들이 아주 소중합니다.”


헌산 길광호 교무님의 인연으로 교정교화 일을 시작한 김 교도는 길 교무님과는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13년 전, 남편(윤은호 교도)이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남편과 함께 은혜의 집에서 길 교무님을 도와드리며 몇 개월을 같이 생활했어요. 길 교무님께서는 오솔길을 만들어주며 남편 이름을 따서 ‘은호로’라고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답니다. 남편이 열반하기 직전에도 길 교무님께 전화를 드려 마지막 인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김 교도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얼마 안있어 길 교무님의 폐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길 교무님께서 강남교당에서 요양을 하실 때 저희 집에 자주 오셔서 점심을 드셨어요. 따뜻하고 유머도 있으신 분인데 왜 그리 빨리 생을 마치셨는지 안타깝습니다.”



# 힘을 주시는 스승님


매일 새벽에 일어나 참회게를 외우며 40배를 하고 기도 후에 교전을 봉독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김 교도에겐 특히 잊을 수 없는 스승 두 분이 계시다.


통관업무를 담당하던 남편이 5공화국 시절 미결사건을 책임지며 온갖 고초를 겪을 때, 서위진 교무님은 의지할 데 없는 그녀를 원불교로 인도해 준 스승이다.


“남편의 모든 사회생활이 차단된 막막한 그 때, 서 교무님께서 교전을 선물로 주셨는데 밤새워 읽었어요. 그때부터 원불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 곁에서 든든한 의지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의 암선고와 열반, 그리고 사업이 흔들릴 때마다 서타원 박청수 교무님께서는 ‘없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내 분수에 맞게 교당생활하고 봉사하면 된다’고 조용히 힘을 주셨던 스승이다.


“전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웃으며 환경에 적응을 잘 합니다. 남이 갖지 않은 친화력을 가진 것은 아주 큰 축복이지요. 지금껏 이렇게 분수에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승님들의 힘입니다.”


명절을 은혜의 집에서 교무님들과 함께 보내는 속 깊은 김 교도는 2011년 노벨평화상이 서타원님께 주어져서 원불교의 법이 만천하에 드러나길 간절히 소망하고, 강남교당의 천불도량 불사에 기여하는 교도가 되고 싶다고 한다.


경제력이 허락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하는 김 교도.


곁에서 상없이 큰 일 들을 하는 교도들을 보면 크게 박수치고 기뻐하며, 마음을 듬뿍 보태는 그녀야말로 우리 교단이 필요로 하는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박혜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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