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그 몇 가지 실험 / - 지천명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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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그 몇 가지 실험 / - 지천명의 우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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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송배 시인의 한 주를 여는 시 - 47

태초에 흙으로 빚어진 육신 / 이젠 내 밥주발만큼이나 낡았다 / 먹고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 밥그릇 수만 계산해온 우둔만 쌓인 채 / 더러는 이빨 빠진 질그릇이 되고 / 또 다시 찌그러진 놋그릇이 되고 / 그래서 아아 / 이젠 정말 한웅큼의 시혼도 / 챙겨 담을 수 없는, 그래서 아아 / 살아온 길 이제사 / 가끔 뒤돌아보는 맥빠진 시어(詩語) / 그러나 지금쯤에서는 / 다시 사는 방법 찾을 수 없음이여 / 내가 간직한 그 그릇들은 모두 비워졌다 / 그동안 겹겹이 쌓인 눈물 / 퍼 담아 강물에 띄울꺼나 / 이곳에서 되돌아보는 태초의 흙 / 다시 흙 속에 꽁꽁 파묻을이거나.



식탁에 앉으면서 이빨 빠진 내 밥주발을 응시하고 있다. 어쩌면 한 일도 없이 먹기만 한 내 나이와 상관성을 생각해 본다. 참으로 지천명이 넘도록 이루어 놓은 것은 별로 없는데 나의 육신은 낡아가고 있다. 어깨가 쑤시고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치통이 도져서 어금니 두 개나 뽑아낸 육신, 이제 만신창이가 가까워 오는 듯하다.


창세기에서 흙으로 아담을 만들듯이 그릇도 흙으로 빚어져서 그 사명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지탱해오고 있다. 아주 단단하게 구워진 그릇일지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망가지기 마련일진대 이를 순명(順命)이라 하던가.


그러나 ‘밥그릇 수만 계산해온 우둔’함은 어쩌면 지금사 뒤돌아보는 무력함에 대한 회의인지도 모른다. ‘태초에 흙’이 ‘다시 흙 속에’ 묻힐 운명을 그릇을 통해 실험으로 증명해 보는 ‘우화’의 형으로 표징하고 있다. 이 작품은 연작으로 무려 14편의 실험으로 계속 되고 있다.


‘시 속에 있는 사상은 과일 속에 있는 영양가와 같이 숨겨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발레리의 말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실험은 어디까지나 실험으로서의 의미 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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