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餘白詩).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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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시(餘白詩). 64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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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송배 시인의 한 주를 여는 시 - 55

바람의 집을 짓는다 / 가슴 황량한 한켠에 / 떠돌던 그림자로 기둥을 세운다 / 다시 구름으로 하얀 벽을 바르고 / 별들만 가득 방안을 채운다 // --어디서 살면 어때 / --어떻게 살면 어때 // 잠시 머물다가 / 바람의 집을 허문다 / 그림자 지워지고 / 구름 흩어지고 / 별들 제자리로 돌아간다 // 모두 떠나버린 빈집 / 허공에 세운 바람의 집.



나는 초기에 삶의 편린이나 궤적이 가미된 향토적 서정성에 심취했으나 인본주의의 실현이나 존재에 대한 성찰의 의미 탐색에 시의 원류를 두고 고전의 진실을 투영하는 일에 몰입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시의 정신과 시의 위의(威儀)를 정립하는 신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의 본령은 사물이나 관념 이미지의 적절한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형이상시의 개념을 설정하고 인간과 자연의 실재상황이 나에게 내재된 진실과 어떻게 화해하는가. 그러니까 외연(外延)과 내포(內包)의 상관성을 형상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지금까지 두서도 없이 어지러져 있는 추억, 사랑, 책, 사진 그리고 사유의 향방도 정리해서 여백을 두어야 한다는 없음(無)과 비움(虛)에 대한 접근으로 현실적 실체를 여과(濾過)함으로써 내적 진실의 탐구에 해법을 찾는 일이었다.


혹자는 ‘허공에 세운 바람의 집’을 두고 초탈의 경지니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심우(尋牛)의 과정이니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가시적인 존재를 탈피하면서 이제는 관조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하나의 가치관을 설정하는 어눌한 몸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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