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 지기 위해 교당을 다녀요'
상태바
'행복해 지기 위해 교당을 다녀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8.10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특별대법회 신앙수행담 / 박도규 , (상계교당)



저는 1999년 1월, 모 월간지에 실린 원불교에 대한 특집 기사 중 무시선 무처선 처처불상 사사불공 등 원불교의 강령 등을 쉽게 풀어준 글을 보고 ‘아! 내가 찾던 바로 그 종교야’하고 탄성을 질렀었고, 그 후 바로 어머니와 나란히 상계교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입교 초기 낯선 용어며 단회다 훈련이다 모두가 생소했지만 원불교의 모든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교당 밖의 다양한 활동들까지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선 법회와 교구 합창단 활동 그리고 원불교 동호회와 인터넷교당 등을 통해 마음일기 쓰는 법도 배웠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공부해나가고 있는지 생생한 증언들을 들으며 제 공부의 폭을 넓혀나갔습니다.


하지만 영글지 못한 수행과 조급한 공부는 이내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서른 중반에 큰 수술을 받고 심신간 약해져 있던 제가 그 많은 일들을 소화하려다보니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누워있기 일쑤였고 정작 열심히 챙겨줘야 할 가족들에 대한 불공은 소홀했던 탓에 아이들의 불만이 쌓여갔던 겁니다.


큰애가 점점 반항적이고 까칠한 아이로 변해가고서야 제 공부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 땐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후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습니다. 잇따른 힘든 경계 속에서 제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교당도 몇 년 씩 쉬다시피하는 등 방황할 무렵, 원기 93년에 친정아버지께서 그리고 2년 뒤엔 어머니께서 열반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같은 해 입교하여 교당의 중앙으로 단장으로 나중에는 교도부회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말년에는 어깨 인대가 늘어나서 젓가락조차 들기 힘들어 할 때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사경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실 정도로 원불교 공부를 좋아하셨고 좀 더 일찍 원불교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성가를 나중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셔서 입만 뻥긋거리시던 모습이며 염주를 굴릴 힘조차 없으셔서 조용히 염주를 손에 쥐신 채 독경 테이프를 틀어놓고 마음 챙기시려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나오실 때 마지막으로 ‘엄마는 즐겁게 길 떠나니 울지마라’ 당부하시고 당신께서 쓰시던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눈 감으셨습니다. ‘죽는다’가 아니라 ‘길 떠난다’그것도 즐겁게. 그러니 울지마라. 이 말씀은 어머니를 여윈 후 새록새록 저에게 행복한 여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원불교를 신앙하였기에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가고 싶어 하시는지 알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스스로 일생의 졸업식을 준비하시고 행복하다 하시며 눈 감으셔서 제가 더욱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다, 라고 하지만, 저는 아직 생과 사가 둘이 아닌 이치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겠구나. 올 때는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고 가야겠구나. 잘 살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잘 죽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그 때 어렴풋이나마 들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력 있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열반 후 법회에 더 열심히 나가게 되었고 목요 공부방에도 마음 챙겨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딸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불공이고 일심공부다라는 생각에 열심히 딸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잘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잘 들어준 후 조언을 해주니 ‘엄마 말이 맞아요’하고 부드러운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실지불공의 참맛을. 그리고 그전까지 반항적인 딸아이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기 보다는 ‘너마저 왜 엄마를 힘들게 하는거야?!’ 내심 원망하고 있었음도요.


법동지 여러분, 교당을 왜 다니십니까? 행복해지기 위해서요? 저는 달라지려고, 변화하기 위하여 다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년 가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힘들어 하던 때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변화가 있으셨나요?’하고요. 지금도 여러가지 일도 바쁘고 힘든데 예전과는 달리 기껍게 일하는 것이 보였던가 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그 만큼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입교하던 십여년 전보다 제 몸은 그만큼 늙어졌는데 제 일은 젊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그래도 요즘은 남의 탓을 많이 안 하게 되었습니다. 너 때문이야~ 원망하기 보다는 뭐가 잘못되었을까? 저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이고 저는 그 변화가 참 고맙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저와 우리 아이들과 그리고 교도님들, 훈훈해져가는 교당 분위기를 느끼면서 교화 대불공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교도님 한분 한분이 교리로 무장하고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이 진정한 자신 성업봉찬이요 대종사님께 효도하는 길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