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으려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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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으려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이 자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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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한 도반 ... 강남교당 조대현 , 박지근 교도부부



얼굴은 알지 못해도 한번쯤은 그녀가 만든 음식을 맛보았을 수 있다. 강남교당에서의 빛깔 고운 오미자차였을 수도 있고, 단아한 한식, 또는 저 멀리 캄보디아와 독일의 봉사현장에서 맛 본 일곱 빛의 비빔밥 일 수도 있다. 얼굴보다 고운 맛으로 기억되는 조대현 교도, 그 손맛을 기억하고 있다면 ‘아, 그 때 그분!’ 할 것이다.



# 교도 조대현의 이름으로


‘대치동 유명 요리강사 조대현’ 이 타이틀의 시작은 닮고 싶은 마음, 스승에 대한 흠모였다.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박청수 교무님을 보며 아내,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자립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조대현’으로 얻은 힘으로 교무님을 도와 드리고 싶었지요.”


그때부터 ‘내가 무얼 잘 할 수 있을까?’ 사춘기 때도 안 하던 고민을 시작한 조 교도. 고민 끝에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자 이번에는 ‘그 솜씨로 요리를 가르쳐 보라’는 교도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자가 한 달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 것. 시간이 곧 돈!‘법회, 봉사 시간까지’ 아까울 수 있을 그런 때이기도 했다.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 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내 이름을 왜 찾고 싶었는지 잊지 않았거든요.”


그랬기에 학생이 몇 명이건 첫 달 수강료는 셈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교당에 희사, 봉사도, 집에 가면 혹여나 마음 바뀔까 법회가 끝나자마자 ‘내가 하겠다’며 교무님에게 달려갔다. 법회가 있는 화요일, 일요일, 교당봉사 시간은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사업은 내 능력으로 이뤄낸 일들이 아니었어요. 법계에서 도와줬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지요. 돌려드리는 건 당연했지요. 전, 더한 기쁨을 받았으니까요.”


캄보디아와 인도에서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돌아오며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던 일, 레겐스부르크교당 봉불식 때 보름동안 머물며 비빔밥을 대접하며 원불교를 알린 일. ‘조대현’으로 살게 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할 수 있었다.


“흠모하다보니 닮고 싶었고, 닮으려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여기에 와 있네요.”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 인 교당요리강습과 프랑스입양아 초청 요리강좌. 재료비만 받는 강습비는 바로 교당으로 희사, 20여 년 전 첫 마음은 여전하다.



# 부부가 하나되어


그리고 교도 ‘조대현’으로 살게 한 남편 박지근 교도.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아내를 ‘좋은 법문 듣고 오라’며 교당으로 보낸 이도 그였고, 세계 곳곳에서 봉사하는 아내를 대신해 기꺼이 가게 일을 맡아 준 이도 그였다. 일원부부는 20여 년 동안 새벽기도 도반이었고, 봉사파트너였다. 그런 부부이기에 가족교화도 어렵지 않았다.


“남동생부부가 형님부부처럼 살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리고선 아이들까지 5식구가 입교, 5명의 형제가 전국 각 교당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언제나 남편에게 그래요. 당신 덕에 원불교를 만나 감사하고, 원불교를 만나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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