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타인을 감동시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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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타인을 감동시킬 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9.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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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 거울에 비추며 공부 ... 불광교당 신준철 교도



“가정에서는 70점요?”


40여 년 동안 의용소방대원으로 봉사한 신준철 교도. 산불진압에 자연재해까지 위험한 봉사 덕분에 수도 없이 마음 조려야했던 아내의 타박이,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야하는 법. “그래도 우리 아저씨가 좋은 일 많이 했지요. 봉사는 100점, 그건 내가 장담해요.”



#‘안에서는 70점?’


화재진압부터 인명구조까지, 그는 1967년부터 2002년까지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 산이며 강이며 현장으로 달려가는 마을 유일의 소방대였다.


“평생 안 볼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보다보니, 왜 나서서 그런 험한 일을 하냐고 물어 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유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위험한 일이기에 더더욱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던 것. 소방대원으로 받은 약간의 활동비를 모아 40년 동안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더 많았다는 게 그의 말. 고향 떠나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에게 여전히 마을지킴이 아저씨, 장학금 준 아저씨, 형편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교준비물 주던 문구점 아저씨, 내 첫 안경을 맞춰 준 아저씨,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원불교도 봉사 덕분에 만났으니까 제가 받은게 더 많은거지요.”


교당에서도 전공을 살려 청년회를 조직해 노인정 공양, 연탄 나르기 등 봉사. 교화에서도, 교무님을 오토바이 뒤에 모시고 각 마을을 돌며 ‘법회참석’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숫자가 무려 150명, 그는 어딜 가든 ‘파이팅하는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제 힘이였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 법연이 뿌린 씨앗


그런 그도 공부에 관해서는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는 신 교도, 특히 10년 전 서울로 올라와 공부는 물론 교화에도 열심히 인 교도들에게 받은 충격은 나태했던 마음을 고쳐 잡게 만든 계기였다.


“사경이며 강독, 질의문답도 잘하고, 내가 세월만 보냈구나, 싶었지요.”


그때부터 가정과 직장에서 교전 펴 놓고 강독, ‘어렵다 힘들다’며 잠시 손 놓고 있던 교화도 생활 곳곳에서 생각했다.


“그러다, 다니는 복지관에 다른 종교 예배시간은 있는데 우리 원불교가 없는 것이 보인 거에요. 이곳에서 법회를 보면 좋겠다, 싶었지요.”


바로, 교도회장님과 함께 관장님에게 의견을 전하자 ‘10명 이상이 되야한다’는 조건으로 너무나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신 교도 이전에 복지관에 교도 분이 다니셨는데, 그 분이 마음과 행동으로 원불교의 너른 품을 보여주셨던 것. 관장은 ‘그 분을 통해 원불교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순간 말 한마디 마음씀씀이 거울에 비춰보며 점검하게 되었어요. 나의 나태한 행동이 법연이 뿌린 씨앗은 물론, 원불교 이미지를 거스를 수도 있으니까요. 내 삶이 타인을 감동 시키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거잖아요 .”


내가 그 사람에게는 원불교를 보는 유일한 거울일 수 있는 것. 교화에 힘 빠지다가도, 오늘도 그가 집 밖으로 나갈 때면 마음에 걸린 일원상 잊지 않는 건 이런 이유이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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