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지 않는 푸른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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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지 않는 푸른 신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4.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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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당의 영원한 청춘 ... 과천교당 손한봉 교도



‘과천교당 창립주이자 초대교도회장, 손한봉 교도’ 손때 묻은 단상만큼 오래된 과천교당의 지난 세월과 백발이 성성한 손 교도를 상상하고 있을 때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그가 들어왔다. 손한봉 교도는 그렇게, 누구보다 젊은 모습으로 푸르디 푸른 이야기를 풀어냈다.



# 용감무쌍한 까까머리 고등학생


60여 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그 시절 교당을 올라갈 때 나던 나무 계단소리가 기억난다는 손 교도. 고등학교 입학 선물이라기에는 좀 특이했지만, ‘이제 너도 종교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어머니를 따라 간 그곳은 좀 많이 신기했고, 낯설면서도 궁금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그, 여자 어르신 교도들 사이에 끼어 설법 들을 용기가 생겼었다.


“뭘 알았겠어요? 교당이 주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어른들 사이에 앉아 설법 들으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지요.”


그 용감한 씨앗 덕분에 얼마 뒤 대구교당 학생회가 창립. 영남지역 연합학생회를 창립하는 자리에서는 부산 유수의 교당을 제치고 대구에 달랑 하나였던 대구교당에서 연합회장을 맡아 돌아왔다. 배짱 한번 두둑했다 하겠지만, 원불교는 곧 청춘의 이름이기도 했다.


“원불교라는 말에는 언제나 용기가 났어요. 겁이 없어졌지요.”


그러고 보니 교당 뒷뜰에서 첫눈에 반한 아내에게 먼저 말 걸 수 있었던 용기도 원불교의 마법. ‘과천교당 출장법회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못할 것 없다’며 용기 있게 법회를 시작한 것도 다르지 않았다.


“과천교당을 창립하고 교무님과 종법사님을 뵈러 갔더니, 종법사님이 저를 가리키며 ‘교도회장 걱정할 필요없다. 저 친구 시키면 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씀에 10년 지기 교도회장이 되버렸지요.”


얼마나 신나게 일했던지, 시간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해 조찬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교당살림이 필요할 때는 ‘모인 돈의 두 배를 낼 테니 부담 가지지 말라’며 분발심을 이끌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는 교도가 있을 정도니 20명 남짓의 그때의 과천교당이 얼마나 정예요원처럼, 신바람 나게 일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과거고요 앞으로의 과천교당이 더 찬란할 거예요. 우리 법동지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요. 나요? 아직도 하고 싶은것이 많은 게 탈이에요.”



# 교당의 청년부부 1호


교당 청년회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해 일원부부가 된 손 교도. 덕분에 같은 교당에서 사돈을 맺은 두 집안은 사이좋게, 처가는 김천교당을, 손 교도 부모님은 봉덕교당과 성주교당을 창립했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 소소한 일상에서도 같은 신앙을 한다는 것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싸우고 나서도 원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금세 사과했지요.”


교당 일에서도, 남편에 뒤질 세라 남편에 하나 더 얹었던 아내였다. 우스개 소리로 ‘청년회원들끼리 연애 많이 해라’며 일원부부 만들기에 적극적인 건 청년회원 부부 1호로서 당연한 일이다.


“함께 이렇게 50여 년을 교당을 오가고 일을 했으니까요. 아내 이전에, 법우가 참 든든하고 소중하지요.”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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