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교전에 담긴 인생의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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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교전에 담긴 인생의 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5.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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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인교구 봉공회 부회장 ... 인천교당 김은중 교도



글자 하나하나에 얼마나 숱한 세월을 담았을까. 몇 천 번 아니 몇 만 번을 읽었음직한 낡은 교전은 어느 장 어느 말씀 하나, 손길 닿지 않은 곳 없이 반질반질했다.


“옮겨 쓰며 한마음 돌리고, 읽으며 다시 채우고 돌렸지요. 말씀 사이사이에 내 인생이 들어 있습니다.”



# 나의 나이테


식당을 하면서도 틈틈이, 지쳐 집에 들어와서도 씻는 것보다 먼저 교전을 잡았다. 줄줄이 외울 수 있을 정도가 된 게 어쩌면 당연할 정도로, 의지했고 진심을 담았다.


“원망이 나를 망칠 것 같았거든요. 사업에 실패한 남편에, 어린 나를 보살펴주지 않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 원망심이 뿌리를 타고 내려갔지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군요.”


하지만 제자리를 찾고 싶던 의지가 더 강했던 김은중 교도. 무결석에 상시일기, 매일 사경을 하며, 바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가게에서 무얼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냐?, 주말에 장사는 안 하고 어딜 그렇게 가냐?’는 질문이 쇄도할 때마다 투박한 검정 교전을 말없이 들어보였다.


“사경을 10권쯤 썼을까요. 그제서야 인과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이번에는 내가 갚을 차례란 생각이 들더군요. 밉기만 하던 남편도 조금 부처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뚝뚝하던 남편이 아내 자랑을 하게 된 때가 그 투박하던 교전이 닳고 닳아 둥글둥글해졌을 때쯤. 그런 그가 ‘이제 교당에 다녀볼까?’라고 하던 때가 낡은 교전에 투명 비닐이 씌어 질 때쯤이었다. 교전은 그의 나이테였다.


“제 인생 덕에 교전이 많이 낡긴 했지만 부끄럽지 않아요.(웃음) 내 지난 인생의 역사이고, 내 살아온 삶이잖아요. 마지막까지 같이 갈 길동무지요.”



# 묵혀두었던 20년 서원


인천교당 봉공회장과 경인교구 봉공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도. 처음에는 무거운 책임감에 거절도 했지만 ‘40세부터는 무엇보다 먼저 봉사하겠다’던 묵혀두었던 서원이 생각나 용기 낼 수 있었다.


“봉사하던 분들이 부러워 그런 서원을 세웠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부족하지만 해보자 했지요.”


토요일마다 교당청소에, 교당 행사 빠지지 않고 고무장갑부터 끼고 궂은일 맡아 하던 그를 누가 역량 부족하다 할까. 교당 밖에서도 김치 담아 외국인 손님에게 선물했고, 봉사 갈 시간 없을때는 남편에게 부탁해 차량봉사를 하게 했다. ‘그렇게 하면 남는 것 없다.’는 주위 핀잔에 “교법대로 사는 인생이다” 말하던 그였다. 그리고 주소를 적어주며 ‘꼭 들리라’던 외국인, ‘그때가 좋았다’는 예전 손님까지, 그의 삶이 ‘옳았다’고 말해주었다.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예’에요. 30대 서원이던 봉공하는 삶까지 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할 밖에요. 꿈이 더 있다면 평생 봉공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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