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 아내를 이어준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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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아내를 이어준 통역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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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예로 법문사경 … 이문교당 정양서 교도


어디든 들고 다닌다는 정양서 교도의 큼직한 노트는 정갈한 글씨체로 법문말씀과 의문, 첨부까지 색색깔로 가득했다.


의문이 나면 적고, 교무님 설법도 정리하고, 하루의 일과도 노트를 덮으며 마무리한다는 그 의 말처럼, 노트의 겉은 안과 달리 닳아 반질반질. 차돌멩이처럼 단단했다.



# 의문 투성이던 아내의 말
“모르니까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거지요. 아내를 따라 교당에 처음 갔는데 일원상이란 용어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창피했지요.”
다음날로 바로 원불교용어사전을 사서 조그마한 수첩에 하나씩 적기 시작한 정 교도. 복습도 철저히 해 교당에 다녀오면 책부터 펴기 바쁜 그였지만, 여기까지는 36년 직장생활 동안 지각 한번 없었던 책임감 강한 그의 성격이 한몫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데요. 하면 할수록 세상이 커지는 거예요. 일원상이 동그라미만을 가리키는 줄 알았는데 그 안에 무한한 뜻을 품고 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전 안을 여행했지요.”
‘이런 법도 있구나’감탄할 때 즈음에는 의문부호 투성이던 아내의 말도 해독이 가능해졌다. ‘몸도 아픈데 봉사 좀 줄여라’할 때마다 ‘다녀와야 마음이 더 좋다’란 아내의 말은 의문이자, 경계이기도 했던 그.


서울역 밥차 봉사를 다녀오고 나서야‘남을 위한 마음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내의 말을 비로소 알아챌 수 있었다.
“아내를 위한 말이었지만 상대방을 이해 못한 일방적인 배려였던 거지요. 이제는 가지 말라는 말 대신 봉사로 피곤한 아내를 위해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했어요.”
그 마음까지 다가가니, 교당에서의 봉사가 뭘까 생각하다 1시간 먼저 교당에 도착해 화단정리와 명찰정리를 했다. 눈이 올 때면 슬그머니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남몰래 교당 골목을 치웠다. 요새는 오히려 아내가 “왜 이리 교당에 일찍 가냐?”고 할 정도, 이것 또한 기분 좋은 변화의 한가지이다.
“제가 생각해도 많이 변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아이쿠’할 때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평소대로 말한 건데 아내가 ‘화 내지 말고 말해요’해요. ‘더 나를낮추어야 겠구나’반성했지요.”



# 나뭇잎에 새긴 마음
“아쉬움이 있다면 10년 일찍이 법에 들어와 공부했다면 더 많이 달라졌을 텐데, 남을 위해서 하는 봉사가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았을 텐데 하는 거지요.”
교전에 몰입하다보면 가끔 ‘내가 벌써 70대인데 ’아쉬움이 들다가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라며 다시 마음잡을 수 있다는 정 교도. 덕분에 교리노트 앞코는 반질반질, 수험생 못지않은 빨강색, 파랑색 가득한 총천연색 노트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것 주고 싶은 것도 많아져, 얼마 전부터는 법문말씀도 쓰고 그림그려 주위에 선물했어요.”


작년 가을에는 예쁜 잎사귀를 골라 책 사이에 고이 꼽아두었다. 아마, 올 가을에는 법문이 적힌 예쁜 책갈피로 교도들 책 사이 쉼을 담당할 것이다.
“10년 전을 아쉬워하기보다 남은 시간을 아끼고 감사하려해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란 후회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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