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인연, 꽃발신심으로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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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인연, 꽃발신심으로 피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10.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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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으로 가는 길 / 여의도교당 김장원 교도

“지난 2년요? 어쩌면 종교를 가지고 나서 인생이 더 피곤해졌는지도 몰라요. 하하”


인과를 모르고 참회를 단어로만 알았다면, 이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 볼 일도 없었을 것이


다. 보려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 김장원 교도는 그 눈을 뜨기 위해 아침마다 참회문을 외


우고 사경을 했다. “지금은 마음보기에도 바쁘지만, 어쩐지 얼굴은 더 편해졌다네요.”



# 줄탁동시


들어보면 이렇게 공 들인 인연도 없을 것이다. 20년 동안 한 직장에 근무하던 선배가 종교이야기를 꺼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신입사원과 과장으로 만나, 20년간 멘토로 모신 분의 이야기에, 꺼리길 게 없었다. 동양철학 서적을 탐독한 그인지라 ‘저 동그라미의 미스터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지적호기심으로 교전을 봤어요. 아내를 따라다니며 절밥도 15년간 먹었지만, 진리를 전하는 수단은 누가 보든 쉽고 간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교전은 그 생활


속에 있더군요.”


교전을 차근차근 읽은 것뿐인데, 거울의 비친 내가 조금 달라보였다. 새벽에 일원상서원문과 참회문을 사경하니 마음까지 달라보였다. “교당 다니는 사람이 그래도 되냐”는 아내의 핀잔에 버럭보다 ‘조심하자’한 것도 이때쯤. 산책 같이 가주면 교당 한번 나가겠다는 아내의 말에 게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마나 성격이 급했는지 편지를 못 썼어요. 손보다 머리의 생각이 더 빨리 지나가, 쓰다가 포기해버리곤 했지요. 그런 저한테 딱 맞는 게 사리연구더라고요.”


공부는 속도를 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도 있었다. ‘한번 멈추는 것, 참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혹시 사람들에게 쉬운 사람으로 비치게 하는 건 아닌 건지’ 대기업에서 퇴직해 홀로 사업을 시작한 그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었다.


“한동안 사회 수업료 많이 냈지요. 하하. 결론은 어리석음을 착한 걸로 착각한 건 아니었는지. 지금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고 돌릴 수 있는지, 강한 부드러움은 무엇인지 공부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더욱 생각나는 사람은 원불교로 인도한 이동하 선배. 단순한 족자 선물로 알았던 글귀는 정산종사님의 법문 말씀이었다. ‘용’자라 읽었던 선배의 사인도 알고보니 ‘둥근 원’자. 선배의 깊이는 원불교와 뿌리를 같이 했다. 선배는 10년 동안 그렇게 공을 들인 것이다.


“그래서 전, 늦게 입교했지만 20년간 예비교도였다고 말해요. 안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했고 밖에서는 선배가 계속 공을 들였고요, 그렇게 줄탁동시된 거라고요.”



# 치열한 행복


그렇게 20년 인연의 열매를 맺고 나니, 보이지 않던 원불교 인연들이 보이게 되었다. 친한친구가 프랑크푸르트 교당에 3년간 다녔다는 것도 이 때 처음알았다. ‘옳다구니’ 바로 입교시키고 지금은 든든한 법동지가 됐다.


“종교가 없었다면, 여전히 즉흥적으로, 편했겠지요.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더욱 삶은 치열해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 소중하고 만족합니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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