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향해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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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향해 훨훨
  • 전지만
  • 승인 2001.04.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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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참된 의미


나비가 되기까지 3단계가 있습니다. 애벌레, 번데기, 나비. 인간 재창조의 단계와 같습니다. 벌레로 기어다니며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과 얘기해서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실컷 먹고 놀다가 가면 그만 아니냐 하면 제가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떡은 김으로 익힙니다. 김이 뭐냐. 사랑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나비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김도 물이 100도에서 뜨거우니까 변화된 것
입니다. 변화가 일어난 김이 또 쌀을 떡으로 바꿉니다. 떡 만들고 나면 물이 없어지죠. 이것
이 희생입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고 하다보면 어머니 피가 말라요.
이것이 사랑이고 희생입니다. 희생 없이는 안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지난번 거창에서 중학생 보고 “누구를 제일 존경하냐?” 하니까, 서슴지 않고 “우리 어머
니를 존경합니다” 그렇게 대답해요. “왜 존경하냐” 물으니, “우리 어머니는 한번도 거짓
말 한 적이 없습니다. 추석 때 운동화 사준다고 했으면 꼭 사줬고, 어떤 경우에 농사가 잘
안되어서 생일날 옷을 못 사주면 왜 못 사주는지 이유를 말해주고 다음에 꼭 사줬습니다”
얼마나 진실한 말입니까.
“어머니 어디 대학 나왔냐”고 물었어요. “아닙니다. 우리 어머니 초등학교밖에 못나왔습
니다.” 대번에 말해.
어머니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희생해서 해줬습니다. 희생, 사랑! 이것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일반적인 인간, 세속적인 사람들의 가치관은 재색
명리(財色名利)입니다. 재산 권세 명예, 나쁜 것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성화(聖化). 애벌레가
나비 되는 것이 제일 큰 가치입니다.
사람이 바다를 항해해도 목표를 가지고 해야지, 목표 없이 배 타고 훠어이 다녀봤자 인생
허무합니다.
대부분은 왔다 갔다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인생이 끝나버립니다.

목적이 있는 삶
성경에 이런 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범사에 감사해라” 목적이
성화라면 뺨을 딱 때려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얼마나 손 아프시오. 진리께서 나를 사랑하
사 나를 단련시키고 인내심을 기르게 하려고,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기르게 하려고 뺨을 때
리셨다’ 누가 욕을 해도, ‘내가 교만할까봐 진리가 농산의 입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
다. 내 옷을 뺏은 것은 추운 것을 단련시키려고 하신 것이구나’ 단련을 받아야 성화가 됩
니다. 성화가 목적인 사람은 진짜 어떤 경우에도 감사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재색명리가 목
적인 사람은 반대로 화가 나고 밉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냐, 병들었냐는 항상 기뻐하냐, 항
상 기도하냐, 항상 감사하냐, 이것을 자기가 진단해보면 됩니다. 오늘 하루 원망을 얼마나
했고 감사를 얼마나 했는가, 비율을 한번 체크해봐요. 내가 진리를 생각한 시간과 잊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있었는가.

성화(聖化)의 1단계 개혁
성화, 자기재창조의 1단계는 개량, 개선, 개혁입니다. 이것이 애벌레입니다. 2단계는 환골탈
태(換骨奪胎). 이것은 번데기입니다. 3단계는 자기 재창조. 이것이 나비입니다. 새삶 운동의
궁극의 도달점은 나비 되는 것이죠. 지금 마음 공부한다 하는 것은 개량 개선 개혁입니다. 1
단계에서는 제일 어려운 것이 개혁입니다. 새삶 운동해서 조금 달라지면 신발도 반듯이 벗
고 등등 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개량입니다. 말하는 것 몸 가짐하는 것 모든 것
이 달라졌다? 이것은 개혁입니다. 그러나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애벌레입니다. 여기서 중
요한 고비가 번데기입니다. 환골탈태. 뼈를 바꿔버려. 완전한 자기 부정. 구조조정, 근본적으
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번데기가 되는 것입니다. 누에 키우면 조그만 알이 커서
한잠 잤다 두잠 잤다 해서 큽니다. 그래서 나중에 크면 입에서 실을 뽑아서 제 스스로 갇힙
니다. 이 과정이 번데기입니다. 왜 갇히냐? 완전한 자기 삶의 포기입니다. 환골탈태하기 위
해 갇혀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고서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기어다니는 애벌레가 산
천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다 청산해, 내가 무엇이다, 내가 무얼 했다. 완전히 구조조정해. 갇혀. 갇힌다는 것은
자기 구속입니다.
전탈전여(全奪全與)라, 다 버리면 다 얻고, 완전히 죽으면 완전히 삽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
은 얘기는 새삶회의 목적이 ‘나비가 되자, 진리의 자유인이 되자’ 인데, 자만해서 내가 남
보다 낫다, 좋은 일도 하고 떡이나 옷을 갖다 주고 선한 일 했다. 이 정도 가지고 새삶 요원
이라 해선 안됩니다. 애벌레로 만족할 것인지, 번데기가 되어서 새로 창조된 나비가 될 것
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2단계 환골탈태입니다. 대종사님 환골탈태의 과정이 영산에서 있었습니
다. ‘어찌할꼬’ 하다가 몸이 썩었지요. 완전히 폐인 되었습니다. 갇혀버렸습니다.
그 갇혀버린 번데기 고치 속에서 애벌레도 21일 되어야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새삶운동은 새로 태어나는 것
새삶! 새로 산다, 새로 태어났다. 새삶 운동은 새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제와 똑같으면
새삶입니까?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나비 될 때까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산다
는 것은 죽어야 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아상(我想)이 죽고, 이기심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법강항마(法强降魔)죠. 새삶도 죽어야 삽니다. 일신일신 우일신(日新日新 又日新) 일사일사
우일사(日死日死 又日死). 안죽고는 새삶이 없습니다. 죽는 연습하는 것이 뭡니까. 칭찬 받고
우대 받는 것이 죽는 것입니까, 뺨 맞고 모략 당하는 것이 죽는 것입니까? 환란을 당해야
성화 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제가 70평생 살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제 손자가 얼마 전에 군대 가는데, 이모 고모들이 아는 사람 통해서 좀 편한 데로 보내줄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제가 혼내주었습니다. “고생하게 내버려 둬라, 고생해야 사람이 큰
다” 그런데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 내가 손자한테 뭘 써줬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의 영광” 이것이 성경을 한 줄로 요약한 것입니다. 죽는 고통을 받아야 새로 창조됩니다.
밭에다 콩 심어야 콩 나지 콩도 안심고 가을에 낫 가지고 콩 베러 가는 것은 도둑놈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씨는 뿌리지 않고 결과만 얻으려고 합니다. 고난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손자한테 이렇게 써줬습니다.
「환란은 너를 옥(玉)으로 만든다. 2001년 3월 13일 조부, 손자 군 입대에 즈음하여」
가서 고통스럽고 못견딜 때 꺼내보라고 주었습니다..

환란은 너를 옥으로 만든다
‘환란은 너를 옥으로 만든다’ 이 말은 어디서 나왔냐 하면, 내가 왜정 때 이리 농민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봤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사는데, 아버지가 삭발을 하고
입산 수도한다고 갑니다. 어린 딸이 아버지 안떠나려고 아버지 하고 따라가. 아버지가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가. 그때 아버지가 어린 딸한테 ‘환란은 너를 옥으로 만든다’고 했습니
다. 아버지와 딸이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졌어요. 그런데 이 딸이 아버지의 그 마지막 말을
가슴에 꼭 품고 어떠한 어려운 경계가 와도 다 잘 헤쳐나가서 나중에는 성자가 된다는 영화
입니다.
“서원이 크면 열도(熱禱)가 있고 열도가 있으면 감투(敢鬪)가 있다.” 영웅, 성인들은 큰
서원을 품고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하고, 나(자기자신)와 싸웁니다. 뜨거운 싸움에서 자기
를 쳐부숩니다. 서원이 없기 때문에 뜨거운 기도가 없고 뜨거운 기도가 없기 때문에 큰 싸
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원이 뭐냐.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인격의 완
성, 성화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맥이 갈라집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영광은 꽃과 같
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돌아
가신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지금 뭐가 남아 있느냐 하면,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던 것, 아
버지가 나를 사랑했던 것, 이것만이 가슴속에 남아있고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사랑
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 우주만물의 궁극의 가치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인격의 완성이 사랑의 완성입니다. 인격이
완성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실패작입니다. 대학 입학했다가 떨어지면 재수하죠? 마찬가지로
성화가 안되면 다시 태어나서 재수하는 것, 이것이 윤회설입니다. 새삶! 나비가 되자는 것입
니다.

무위이화로 새삶운동을!
산은 높고 커야 합니다. 그럴수록 진리의 엄숙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도인들이 산에
가서 수행해 도통하는 것입니다. 산에는 정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이 말했습니까? 강의했
습니까? 말 없죠. 말없는 말, 소리 없는 소리, 보이지 않는 글월, 이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감추는 것입니다. 드러내면 그때부터 병이 납니다. 나무의 생명은 어디에 있어요? 뿌리죠.
땅속에 뿌리가 묻혀있어야 뿌리가 건강하게 크고 나무도 성장하지, 뿌리가 나 좀 봐라 하
고 흙밖에 나와 있으면 나무는 말라죽습니다. 모든 진리가 드러내기 좋아하면 말라죽습니다.
나를 없애야 진리를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심입니다. 무욕, 무위, 어떻게 내가 해야겠
다 가 아니라, 무위이화 아시죠? 아무 것도 안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새삶 운동도 무위이화로! 겸손하게 가만히 앉아서 선(禪)하고 공부하고 아무 말 안해도 찾
아온 사람이 느낄 수 있고, ‘복잡했던 마음이 개운해졌다,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하게 해
야 합니다. 큰 산! 높은 산! 산에 올라가면 올라온 사람들이 힘을 얻고 느끼고 가듯이 새삶
회에 온 사람들이 느끼고 힘을 얻고 가도록 만듭시다.
<박동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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