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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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비법
  • 전지만
  • 승인 2001.04.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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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의 자유,생사의 자유


송타원 송영봉 종사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법이 높으신데 제가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된 것은 대종사님 생존해 계실 때
대종사님의 눈을 볼 수 있었던 덕택입니다.
사람에게는 눈이 있습니다. 그 눈으로 물건을 보는데 안보일 때가 있습니다. 멀리 있으면 안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망원경을 이용해 보기도 합니다. 또 아주 세밀한 것은 돋보기를 쓰
거나 현미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를 쳐다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미경으로 자기를
자세히 보고 망원경으로 멀리 볼 줄 알아야 정신을 세밀히 살펴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정신을 향해 “차려” “열중 쉬어”하는 연습을 시켜야겠습니다.
“차려”구령을 듣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열중 쉬어”하면, 쉬는 시간에
딴 생각 하기가 쉽습니다.
“장양성태(長養成胎)”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마음을 거두어서
마음 속에서 성인의 태를 길러야 올바른 눈을 갖고 올바를 사람이 되어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대산상사님께서는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장양악태(長養惡胎)하며 살아가고 있다”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마음병 환자
대종사님께서는 어려서부터 평범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차별현상과 생사에 대해 어려서부터
의심을 품으셨습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주먹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우선합니다. 먹는
것 부터 찾는게 억겁다생의 습관으로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 자신을 위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만 추구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불화하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속을 현미경으로 바라보고 참 나를 찾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마음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세가지 마음 병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부지증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니 참
자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수행부실증입니다. 법회에도 참석하고 좌선도 하고 나름대
로 수행을 하긴 하는데, 제대로 수행이 되지 않습니다. 셋째는 득력불감증입니다. 교당에 얼
마 다니다보면 법호를 받고 법위도 오르는데, 마음 속에서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주위 사람
들과 불화하게 됩니다. 모든 마음을 거두어 자기 마음의 실상을 봐야합니다.
수행을 한답시고 열심히 하긴 하는데, 일생을 마칠 때 되돌아보면 수행한 내용은 없는 경
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뭐든 ‘자유할 수 있다’고 자신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또, 흔히 하나되자고
하는데 그 방법은 아십니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많은 악기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악기들마다 소리가 제 각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각각 다른 소리들이 조화
를 이루게 되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남과 북도 서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자신 그 자체로 딱 맞아야, 그 자체로 화합할
수 있어야 하나가 됩니다. 조금씩 다가가 마음으로 악수를 나눠야 하나가 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우선 내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겠습니다. 법회를 시작하며 약 1분간 입정을 했습니다.
입정했던 1분 동안 마음이 하나가 되셨던 분 계십니까?
얘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어느 노스님과 노스님의 제자가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스님께서 설법을 하시고 제자에게 “궁금한 것 없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가 여쭙기를
“수행을 해도해도 안 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하니, 노스님이 답하기를 “안 하니까 안
되지”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길을 찾아 수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생 헛수고, 헛바퀴 돌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바로 자기 마음이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도님이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친구 문병을 갔습니다. 환자가 그 교
도님께 “40이 넘으면 건강 검진을 한번쯤 받아봐야 하네, 그러니 자네도 한번 진찰을 받아
보게”했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검사를 해보니 간암 3기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음에 병원에 누워있던 사람이 환자가 아니라, 오히려 문병 간 사람이 환자였던 것입니다.
우리 사는 모습도 대부분 이렇습니다. 자기 마음이 병들었는데도 병이 난 줄도 모릅니다.
여러분, 나를 진단해봅시다. 바치는 기쁨 속에 살고 있는가, 바치는 기쁨을 찾고 사는가 진
단해봅시다. 법신불 안에는 삼라만상이 돌아가는 그 이치가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심고를 올
릴 때는 법신불과 마주한 심정으로 심고를 올리고, 회상을 위해서는 내 몸을 희생해도 좋다
는 정신으로 봉공 해야 합니다.
나를 바치는 마음이 믿음과 희생으로 연결되어야 그 속에서 오는 기쁨이 진짜 기쁨입니다.

깨달으면 자유롭다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깨달음의 안경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무한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글을 읽어 달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어린
저는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글자만 줄줄 읽어드렸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혼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욕심, 아만심, 도에 취해서 살며 비틀거립니다. 예산 없이 인생을 삽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부녀자들에게 한글과 주판 교육을 시켰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공부
하게 하여, 상조조합을 만드셨습니다. 조합을 만들어 생활을 안정시켜주시더니 후에 정신의
수지 대조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대종사님 당시부터 정신·육신의 수지대조를 지도하셨습니다. 정신과 육신의 수지대조로 안
목이 커지는 것이 정신개벽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조그만 지구의나 지도로 그려 축소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도 축소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전생 현생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
제가 전생이고 오늘이 현생이며 내일이 미래입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 것만 좋아하고 짓지 않으면 안됩니다. 삼세를 정확히 깨쳐야 합니다.
구타원 종사님 자제 분이 법회를 보러 왔다가는 법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종
사님께서는 총부 구도실 방에 거처하게 하시고 큰 방 청소를 맡겼습니다. 방 청소를 하는데,
걸레에서 구정물이 뚝뚝 떨어지게 대충 짜서는 걸레 끝만 잡고 방바닥을 휘휘 두르기만 했
습니다. 그래가지고 무슨 청소가 되겠습니까? 걸레를 꼭 짜서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방을
훔쳐야 청소가 되지요. 하루는 청소를 하러 가니 대종사님께서 먼저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
다. “방 청소는 중생이나 하는 일이지, 복족족혜족족하신 대종사님께서 왜 방 청소를 하십
니까?”하니 대종사님께서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감이 입으로 떨어지더냐. 너희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정확히 안다는 것 뿐이다”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진리의 변화무쌍함을 정확하게 알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자기정진을 해야합니다. 여러분들은 공부의 정도나 처한 상황이 모두 다릅니
다. 그 각각 다른 형편대로 자기의 경지를 살피고 습관을 대조해야 합니다.
옛날 어느 안방 마님이 눈을 자주 깜빡깜빡하는 버릇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마당쇠가 마당
청소를 하는데 마님이 눈을 깜빡깜빡 하고는 방으로 들어 가길래 청소를 하다 말고 따라오
라는 말인 줄 알고 따라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또 보료에 앉아 눈을 깜빡깜빡하더랍니다.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갔더니 마님이 의아해하더랍니다. 그래서 “방금 눈을 깜빡깜빡하며
따라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하니, 그제서야 마님이 자기의 습관을 알고 고쳤다고 합니
다.
우리는 모두 한 두 가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자신의 병을 자세히 살펴보아서
고쳐나가야 합니다.
조금 전에 신앙·수행담을 하신 교도님은 원불교를 다니며 전혀 다른 분이 되셨다고 했습니
다. 달라지고 바뀌셨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하면 달라지게 되고 기질변화하게 됩니
다.
진리의 변화하는 과정을 소상히 알아 나를 바꿔나가면 정신의 수양력, 사리의 연구력, 작업
의 취사력을 얻게 됩니다.
기질변화가 되면 남북도 저절로 통일되고 우리도 저절로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마음공부입
니다.

고락의 자유·생사의 자유
대산상사님께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의사 간호사가 오면 웃으시며 즐거워하시다
가 가고 나면 금세 다시 아파하시곤 하셨습니다. 대산상사님께서는 아프고 안 아프고를, 즉
고락을 자유로이 하셨습니다.
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이야기입니다. 문수보살이 보현보살에게 “돼지에 인연을 걸어
제도하겠으니 지켜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돼지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보현보살이 보니
문수보살이 너무 오래도록 진흙 바닥을 기어다니는 돼지생활에 빠져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보현보살이 ‘본분사 잊기 쉬우니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적은 종이를 보여주자 돼지가 종
이를 먹더니 그만 죽었습니다. 돼지 주인이 놀라 물으니 보현보살은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
라고 설명을 해주었답니다.
고락을 자유로 하고 생사 거래를 자유로 한다면 그 가운데 마음공부, 하나되는 공부가 다
들어있습니다.
정신건강의 비법은 다름아닌 바치는 기쁨을 찾고 깨달음을 얻어 자기를 정비하고 기질을 정
비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고락과 생사거래를 자유로 할 수 있게 됩니다.
하고 또 하고, 아주 간절히 공부합시다. 확실하게 알고 제대로 된 공부길을 갑시다. 집에 돌
아가셔서도 정신의 “차려” “열중 쉬어”를 잊지 마시고, 끝까지 공부해서 결실 맺으시길
바랍니다.

<정리: 이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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