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화정책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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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화정책과 비전
  • 전재만
  • 승인 2001.06.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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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 김일상 교화훈련부장


저의 교무생활은 금년으로 26년이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부교무 시절을 포함, 15년을 서울에서 봉직했습니다. 때문에 만약 저에게 약간의 교화능력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서울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은 저에게 항상 고향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제가 상경하여 처음 근무한 교당은 원남교당이었고, 원남교당에서 6년간 봉직하면서 모셨던 회장님은 보산 고문국 법사이셨습니다. 저는 보산님께서 교도를 대하고 요인회를 운영하시는 심법(心法)과 그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면에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서울교구 사무장 시절, 그 가운데 봉공회가 주최하는 바자회를 준비할 때 판매대를 만들다보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습니다. 3년이란 짧은 세월의 사무장 시절이었지만, 당시 배우고 느낀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 시절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서울에서 하는 일이 2∼3년 지나면 지방에 파급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서울의 교화가 지방교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서울의 교무와 회장단은 특별한 사명감으로 원불교의 얼굴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창립되는 서울교구 원덕회가 교단 교화에 커다란 물줄기 역할을 하고, 또 새로운 물줄기 역할을 수행해 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저는 ‘교화정책과 비전’이란 주제를 받아 강의하게 되었는데 제 능력으로 볼 때 비전까지는 제시할 정도가 못됩니다. 그러나 어떤 교화정책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평소 교화지론은 대종사님께서 깨치신 일원의 진리를 믿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을 교법에서 찾아야 한다는 극히 당연한 생각입니다.
원불교 「교사」를 보면 원기 55년 말에 교당수가 175개였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교당은 국내에 500개, 해외에 50여 개에 이릅니다.
많은 분들이 때로 원불교 교화상황에 대해 ‘정체’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발전이란 때로 물러서기도 하고, 머물러 있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항상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 잠을 안자고 일만 한다면 며칠이나 일할 수 있겠습니까?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원불교 교세가 이 만큼이라도 발전해 있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원덕회원님들과 같은 분들이 쌓으신 공덕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23년 동안 교당 교무로 봉직하면서 거의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교당 교화를 발전시킬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고민에서 얻은 하나의 결론은 교무와 교도회장단의 마음이 하나로 합해졌을 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분리된 상태로는 교당의 교화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분당교당에서 봉직할 때였습니다. 저는 회장님에게 두 가지를 부탁드렸습니다. 그 하나는 교도님보다 30분 먼저 오셔서 교도님을 맞이해 주십사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교당의 일을 위해 죽비를 잡고 요인회를 진행하여 주십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당운영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교당을 만들고 운영하는 이유는 교단을 발전시키자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 대종사님의 깨달음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모든 생령에게 미치게 하자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덕화가 미치게 하자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깨달은 내용이 뭡니까? 대종경 서품 1장에 나온 말씀 아니던가요? 대종사님께서 진리를 깨달으시고 그 깨달음을 서품 1장에 담아주셨습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19년간 고민하시다가 깨닫고 전해주신 이 말씀, 진리는 하나이고 하나인 그 진리는 생멸이 없고 인과 보응된다는 것 아니던가요?
우리가 해야할 일은 생멸 없는 진리, 인과 보응의 이치를 확실히 믿고 깨닫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대종경 인과품 16장에서 밝혀주신 바와 같이 그 어느 일보다 가장 급한 일입니다.
교단 초기에 대종사님께서 법문을 설하시면 모두가 다 알아들었던 것 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대중 가운데 조는 사람도 있고, 인과에 대해 의심을 갖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럴 때면 대종사께서 ‘너희들의 머리를 열어서 머리 속에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넣어주어 그것을 믿고 깨닫고 실천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니, 우리는 대종사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정확히 짚어야 할 것입니다.
원불교에 오래 다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종사님이 전해주신 진리를 얼마나 깨닫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깨달음이 어느 정도인가 계속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대다수가 양산 김중묵 종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양산 종사님께서 수학하실 때였다고 합니다. 양산 종사님은 원불교 교법을 공부하는 일보다는 심리학이나 논리학 교육학 등을 공부하는 것이 더 재미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종사님으로부터 인과와 관계하여 크게 꾸중을 받고 ‘아차, 이게 아니구나’하는 깨달음이 계셨더랍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양산 종사님은 나이 70이 넘어서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총부를 다니실 만큼 구김없는 분이셨습니다. 어찌보면 천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청소년 시절에 이리에서 전주로 다니는 경편열차를 많이도 공짜로 타고 다닌 일이 있었는데, 대종사님의 인과 법문을 받들자마자, 없는 살림에 쌀 한 가마를 사서 그 값으로 몽땅 열차표를 구해 소각을 시키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시원하더랍니다. 그 후 양산 종사님은 전국을 돌며, 갖은 노력을 다하여 인과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인과의 세계』란 책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대종사님의 교법을 접한 우리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전환이 없다면 어찌 우리가 신앙적으로 주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저는 지난 해 교화훈련부장직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고 나서 3년 동안 교화훈련부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고민했습니다. 교전을 생각하고, 좌산 종법사님께서 6년 동안 강조하신 법문 중 한 가지였던 교법정신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경산 교정원장님께서 일간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시며 제시한 ‘마음공부로 교단을 열어가겠다’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세 가지 방향으로 교화의 가닥을 잡아가자고 출가 재가 교도님들에게 협조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그 하나는 교화단을 통한 교화, 둘째는 법위단계별 훈련을 통한 교화, 셋째는 청소년교화입니다. 이 세 가지는 어떤 분이 교화훈련부장이 되시더라도 지속적으로 힘써야 할 과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고 협조를 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첫째, 교화단을 통한 교화입니다.
교화단 교화는 저의 이론이 아닙니다.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이루시고 교화할 때에 바로 교화단을 통해 교화하셨습니다. 원불교 교화의 정체성, 바로 교화단 교화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교단 초창기 대종사님은 방언공사와 백지혈인의 법인성사 모두 교화단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화단을 얼마만큼 탄탄히 하느냐에 따라 교단이 발전도 하고 정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교화단의 역사를 생각하면 대종사 당대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현재의 교화단을 냉정히 살필 때 모든 교당에 교화단이 구성되어 있지만 교화단이 제대로 꽃을 피우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교화단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교화단이 교화단을 통해 해야할 본질적인 것 즉, 공부가 중심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공부를 하는 교화단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방법은 대종사님이 하시고자 하셨던 일기 기재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도님들이 일기 기재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불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해야하는 일입니다. 만약 공부를 하지 않으면 범부로 남아있겠다는 것 밖에 안되는 일 아니던가요?
원불교 교도라면 누구나 감각과 감상, 심신작용 처리 건을 기재하는 것으로 공부의 길을 잡아 그 공부한 바를 교화단회에 출석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 진정한 원불교인이 되고, 또 불보살이 되어 우리의 영생사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원불교 다니는 사람과 안 다니는 사람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공부인과 비공부인의 차이여야 할 것입니다.
원불교를 아는 만큼, 마음쓰는 것과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남 보기에 교당생활이 열심이고 봉공활동을 열심히 한다 해도 정말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는 법위단계별 훈련을 통한 교화입니다.
법위등급을 통해 우리의 수행 정도, 인격 정도가 어디쯤 와 있는지 측정할 수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훈련시켜 부처를 만들겠다 하셨습니다. 공부하는 만큼 부처됩니다. 부처는 수행과 훈련 없이 결코 안됩니다. 지난 해 교헌을 개정하고 많은 교규가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교당 규정을 보면 법위 사정의 대상자는 의무적으로 단계별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위 단계별 훈련은 시행된 적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규정이 있는데 이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부임과 동시에 법위단계별 훈련을 위한 시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조속히 시행하기 위해 여러분의 뜻을 모으려고 교화편수위원을 모시고 회의 한 결과 모든 분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더 연구하여 내년부터 시행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법위단계별훈련 프로그램은 보통부, 특신부, 상전부, 항마부를 두어 보통부 8과정을 비롯하여 이후 각각 4과정으로 해서 총 20과정의 단계별 훈련입니다. 그리고 이의 훈련은 1박2일의 훈련입니다. 이론 강의로만은 안됩니다. 우리가 교당을 오래 다녀서 아는 일이지만 법문 못 듣고 법문 몰라서 실천이 안되고 부처 안 되는 것입니까? 상시훈련, 정기훈련을 해야 되는데, 강의로만은 안됩니다. 염불도 해봐야 하고 좌선도 해봐야 합니다.
대산 종사님께서 각 지역에 훈련원을 세워주신 것은 전교도가 훈련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일텐데, 그 뜻 다 못 받들어 드린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1박2일간의 정기훈련을 주기적으로 받아 공부하는 방법을 확실히 배워 공부해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주 5일제 근무가 된다고 합니다. 한 달에 2번은 놀러가도 한 달에 2번은 공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두 번 해보고 물러서는 교화 그것은 교화가 아닙니다. 변할 때까지 끊임없이 하고 또 해야 합니다. 단계를 두어 시행하고 또 시행해서 모두가 부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교구 사무장 시절, 저는 대학생교화의 준비로 단계별 이론 교재를 만들다가 예산과 인력이 미치지 못해 결론을 얻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고3 때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을 전혀 모르다가 대학에 입학하여 운동권에 들면 몸을 바쳐 민주화운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우린 왜 원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을 저렇게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대학생의 경우 4학년이 3학년을 맡고, 3학년이 2학년을 맡고, 2학년은 1학년을 맡아 진리를 의식화 하는 공부 교재를 만들다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법위단계별 훈련으로 전 교도를 진리적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구제받고 세상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제시하신 법인데 왜 못합니까? 이것을 못한다면 이것은 우리 책임 아닙니까. 해 봐야 합니다.

셋째는 청소년 교화입니다.
교단의 현실을 숨겨놓고 해결하려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아닌 것의 경우, 감추면 감출수록 그 결과는 역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많습니다. 숨겨놓으면 오히려 다 썩습니다. 내 놓고 환부를 도려내야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풀어야할 문제 중 하나, 지금 우리 교단을 위해 한 생을 살겠다는 출가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문제입니다. 영산대학교,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불교만이 아닙니다. 이 사회가 성직에게 설자리를 주질 않습니다.
청소년들은 말합니다. 재미있게 해달라고.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 이런 사회는 문제가 늘 상존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먼저 찾게 해야 합니다. 종교가 해야할 일, 그것은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게 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은 도덕의식이 희박합니다. 청소년 교화는 청소년의 도덕정신을 함양시키고 부활시키는데 두어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깨닫고 말씀하신 초점은 도덕부활운동에 있습니다. 도덕정신을 언제부터 주입시켜야 할까요? 어려서부터 시켜야 합니다.
교화훈련부는 청소년 교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도덕정신을 생각하는 한 계기를 만들기 위해 금년 7월 말에 전국청소년을 대상으로 훈련을 시행할 것입니다. 그간 교구에서 시행했는데 금년 한 번은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총부에서 학생훈련을 시행하려는 것입니다. 전국의 학생출석은 한 주 3∼4천명입니다. 이들이 익산 총부에 모여 2박3일간 함께 훈련해보자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큰 모험입니다. 그러나 이 모험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이 깊던지 얕던지 간에 수레를 끌고 건너야 할 상황입니다. 너무 깊으면 메우면서 강을 건너야 할 형편입니다.
금년 학생훈련은 2박3일씩 두 차례 시행하게 됩니다. 예산 없는 훈련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청소년들을 위한 훈련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진행시켜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지 않는 가정의 미래가 없듯이 청소년이 없는 교단도 없습니다. 일반 가정도 자기 자녀들을 위해 수익의 상당부분을 학원이나 과외비에 투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법자(法子)들을 길러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후배들이 모두 없어질 지경입니다. 많이 후원해 주십시오.
오늘 저는 교화정책이라 하여 여러분께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교화비전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지는 잘 몰라도 교화의 성공여부, 비전은 무엇보다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고 믿습니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고 실천해 나가려는 굳은 의지,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굳은 의지를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 교화단 교화를 강화하자, 또 법위단계별 훈련을 통해 구체적인 성과와 결실을 만들어 내자, 또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키우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전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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