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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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의 진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9.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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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타원 김이현 종사


반갑습니다.
오늘은 교리 공부훈련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출가·재가, 선진·후진이 일원상 진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합시다.
돌아가신 동국대 학장분께서 “부처님은 한여래 천보살이라고 하셨는데 원불교는 어떻게 천여래 만보살이 나오냐”고 질문을 하시더라구요. 그 때가 정산 종사님 법어집이 나오기 전인데 그 분이 훈련법을 보시면서 “견성 과목에 강연이나 회화가 방해가 되는 것 아니냐”고 반대 의견을 내시더라구요. 그런데 취사과목의 유무념 과목을 대조하는 대목이 나오자, 그 분이 “참 많이 변하겠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후로 정산 종사 법어집에 우리가 말로만 듣던 분을 사진으로 보면 더 좋듯이 직접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으로 일원상을 보여주면 신앙과 수행이 변해서 천여래 만보살이 나올 수 있다는 법문을 보고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다고 했는데 그 분을 만나자 그 분이 불가에서도 일원상을 알았지만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은 것은 진급이 빠른 줄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으로 삼았다 해도 일상생활에 활용하지 못하면 위력을 얻는 것도 체성에 합해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이 시간은 일단 말로 알아서 실천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합시다. 말로 배운 깨달음, 스스로 느끼는 깨달음이 있지만 실천해 보아서 얻은 깨달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안전한 것입니다.
법신불을 대하시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사람도 그 사람에 대해서 속속 들이 알아야 느낌이 있듯이 내용을 좀 알아야 법신불에 대한 느낌도 생깁니다. 법신불을 보고 어떤 느낌이든지 틀린 느낌은 없습니다. 일원상은 원만하기 때문에 다 맞지만 상황따라 느낌이 다를 수 는 있겠죠? 대종사님 진영 뵈면 어떠십니까? ‘법통제자, 혈통제자, 심통제자 되야겠습니다’하고 생각이 드십니까. 일원상의 진리에 대해서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원(一圓)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요,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정전이 총 3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교의편중에서 일원상이 가장 뒤에 있으면 어떨까요? 말도 안 되는 말이죠.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 모체가 되는데 안 되겠죠. 만약 일원에 상(相)자를 넣으면 어쩔까요? ‘일원상’은 이라고 하면 “우주 만유의 본원을 상징하며, 제불 제성의 심인을 상징하며”라고 해야겠죠. 이것은 믿거나 말거나 깨달으셔서 말해 주신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깨달으시고 처음 한 말씀이 뭡니까? 「만유가 한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두렷한과 한 자를 바꾸면 어때요. 바꾸면 안 됩니까?. 두렷한이 원이라서 바꾸면 안 되겠죠. 이미 깨달으셔서 일원상을 말씀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은 무량세계라고 하셨죠. 만유가 한 체성이라는 것은 ‘모든 유무정물이 하나다’라는 말이죠. 얼굴이 각각 다르지만 체성은 하나요. ‘유무정물 모두 뿌리가 하나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주 만유의 나이는 다 동갑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깨달으시고 보니깐 만유가 한체성이구나 우주만유의 본원이구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유가 한 뿌리인데 서로의 관계가 어떻다고 하셨습니까? 어떻게 얽혀있는가? 은혜로 관계하고 있습니다. 천지·부모·동포·법률은 은혜의 본원입니다. 근원적인 은혜입니다. 근원적인 은혜를 깨달으신 거죠. 천지·부모·동포·법률 그 가운데는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서 상극도 있습니다. 부처님도 상생의 원리를 자세하게 밝히지 않으셨는데 대종사님께서는 ‘때가 원시반본(原始反本)의 시대라. 성주괴공에서 성(成)으로 돌아오는 시대라. 상극의 원리는 힘을 못 쓰고 상생의 원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때에 맞는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일원을 대하면 은혜를 느껴야 합니다. 은혜를 알면 감사가 있고 참회가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시는 분은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늘 부지런합니다.
일원은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라는 말은 ‘일원은 대종사님의 심인이며’라는 말과 같죠. 일원은 대종사님의 심인입니다. 심인이란 마음의 도장을 딱 찍은 것이예요. 지금 여러분들 심인을 찍어보면 재미 있을 텐데. 결국 항상 동정 역순간에 희노애락 어느 심정을 발휘하건간에 이런 심인 나온다 이거죠. 제불·제성들이 갖는 마음 도장입니다.
일체 중생의 성품과 마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성품과 마음을 알아야 중생인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성품과 마음이 같습니까? 마음 작용할 때 성품을 떠나지 아니하는 것이 성인이요. 마음을 작용 할 때 성품 떠나면 중생입니다. 어떻게 마음 내야 성품을 떠나지 않은 것입니까? 육근으로 마음이 나오는데 입이 바쁘고 부지런하죠. 어떻게 입을 열어야 성품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은 수행편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제불제성의 심인, 마음이 나오는 바탕이 성품이죠. 심지(心地) 이렇게 표현합니다. 육근문으로 나올 때 뿌리를 벗어나 나와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우리도 심인으로 공부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도 심인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마음과 혼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 성품속에 갊아져 있는 것, 그것이 반야지(般若智)라고도 하고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도 하고 알음알이라고도 합니다. 알음알이로 인해서 좋다 싫다하고 하자, 말자라는 마음이 나옵니다. 알음알이를 정신기운이라 합니다. 가장 무서운 병이 정신병입니다. 요즘은 돈 벌려면 정신과를 하면 된답니다. 인류의 비운입니다. 이것은 정신기운이 약해지는 것이거든요.
우리는 영혼, 생혼, 각혼까지 있습니다. 마음을 깨닫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어찌 쓰느냐? 내 마음을 보아야 남에 마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심인이 한결 같아요,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원입니다. 일원의 은혜, 일원의 마음, 일원은 우리 중생과 함께 있습니다.
이 원상의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진리를 믿으며 노력해야 합니다. 알아가는 것이거든요. 믿음이 생활에 접목된 것입니다.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잊어버리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잊어 버릴 수가 없어요. 육근문을 열라고 할 때 수행을 통하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우주만유 본원으로 믿으며 확실히 믿으니 어때요. 종교인의 재미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재미가 없다하면 기분 따라 즐거움을 불어 줄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불어 넣어주십시오. 도(道)에 신심 있는 사람은 재밌습니다. 깨달음이 있으니 재미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이기는 것 힘이 세지는 그 재미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애 먹어도 나를 포기할 수 없어요. 금생에 안 되면 내생에 해야지한다던가. 포기할 수 없으면 믿음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성으로 한다하면 일체중생의 본성으로 법마상전, 법강항마로 올라 출가위에 올라야 합니다. 출가위는 ‘어떻게 남을 도와줄것인가’를 생각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일원을 딱 뵈면 은혜를 느껴야 합니다. 모든 성인의 마음, 성품을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법신불 사은님은 제불제성이 함께하고 대종사님이 응감하시니 기원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위력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소 유무 (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 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여기 까지가 성질 하나고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十方三界)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이게 두번째 성질입니다.
-진공 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 광겁(無始曠劫)에 은현 자재(隱現自在)하는 것
이게 세 번째 성질이죠. 나를 가꾸고 불공을 해도 성질 따라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일학(一學)만해도 되지만 앞으로는 삼학(三學)을 다해야 한다. 삼학을 수행해야지 체성(體性)에 합할 수 있습니다. 대종사님은 한부분을 가지고 편수하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허공을 이전 등기한 사람은 그렇게 할 겁니다. 언어명상까지 돈공한 자리로서 깨달으시고 보니까? 성품의 바탕이 우주의 근본으로 텅 비어 있는 줄 아시고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서 분별이 생겨나심을 압니다. 분별을 잘 잡는 방향으로 분별할 때 자유자재해야 합니다. 공적영지가 깃들어 있어 분별이 생깁니다.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서 차별이 조화를 가집니다. 시방삼계가 손 안에 물건 보듯이 다시 나타나는 부분을 공(空) 대(大)자리라고 하셨고 광명따라 있어진 자리에 조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주만유가 찰나 찰나 생사(生死)고 자유자재합니다. 성품의 내용은 어떻게 생겼느냐? 말로도 할 수 없는 입정처 같은 성질도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공적영지가 있어 분별도 있고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깁니다. 공 원 정(空圓正)으로 나타내신 겁니다. 유(有)는 무(無)로 무(無)는 유(有)로 하면 조화하는 이치요.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는 텅빈자리를 말하고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하면 광명을 따라 다시 분별이 있어 업보 차별이 한량없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내용이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지요? 내용이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어 세가지를 모두 믿어야 합니다. 조화는 믿겠는데 텅빈 것은 못 믿겠습니까? 다 믿어져야 합니다. 일원은 우주만유를 통해서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지라 가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 알아도 해탈 할 수 있습니다.
분별 관리를 잘하십시오. 일체유심조라 마음을 잘 쓰십시오. 공을 들이는데 습관을 무너뜨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서원을 세우시고 끊임없이 계획하고 진행하면 영생의 눈이 뜨입니다. 일원이 우리들의 성품이고 모든 제불제성의 마음이십니다. 알면 그대로 수행해 가는데 큰 방향이 됩니다. 믿는 사람이 진리를 가져갑니다. 이전 등기는 누가 하느냐? 깨달은 사람이 합니다. 누가 복과 혜를 장만 하느냐? 활용하는 사람이 가져 갑니다. 육근의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고 심신만 있으면 믿고 닦아서 이전등기를 하십시오. 다음 시간에는 신앙과 수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분별을 잘 사용하는 법을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다음호에 일원상 신앙 수행 계속>(정리 전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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