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의 이론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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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의 이론과 실제
  • 승인 2002.03.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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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한국부름의 전화 봉사대장


자원봉사는 체험
(큰 목소리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대중;대답이 작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실 분들인데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시면 희망은 커녕 좌절만 안겨주겠습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대중;큰 목소리로) 반갑습니다.
네 좋습니다. 아마 우리 주변에 한 사람도 좌절하는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자료집에 보면 제 자료가 있는데 저는 자료를 싫어합니다. 자원봉사는 공식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미 봉사활동 많이 하셔서 아시겠지만 이론과 실제가 맞지 않으실 때가 참 많다는 것 잘 아시죠? 여러분들 어때요? 1+1=2가 되던가요? 자원봉사를 하다보면 아닐 때가 참 많아요. 100이 되기도 하고 200이 되기도 하는가 하면 때로는 마이너스가 돼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공식에 맞추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실 제가 여기 설 주제가 못됩니다. 직접 현장에서 뛰시는 분들을 모시고 제가 어떻게 ‘자원봉사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걸 여러분에게 여쭤봐야 하는데 외람되게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저는 ‘실천 없는 생각’은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 교육, 지식공급을 해도 그것은 지식공급에 불과한 겁니다. 이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자원봉사가 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직접 나가 실천하는 것만이 자원봉사 활동입니다. 때문에 ‘자원봉사란 무엇이다’라는 설명보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자원봉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원봉사는 참는게 아니다
저희 ‘부름의 전화’를 전화센터로 알고 계시는데 전화상담 하는 곳이 아닙니다. 1987년에 ‘나좀 도와주세요’라는 전화를 개설하고 자원봉사를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라고 하면 사회복지시설, 양로원, 고아원, 영아원 뭐 이런곳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정말 어려운 분들은 집에 있더라구요. 그분들이 바로 장애인입니다. 장애인분들은 지하실 어두운데서 나오지 못하고 보통 30년 40년 밖에 나온적이 없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 하늘이 파랗지만 그 하늘을 한 번도 볼 수가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부름의 전화’가 시작된 겁니다.
1987년 저희들의 활동이 방송에 나갔습니다. 지금도 흥분되는데 그때 걸려온 전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전화는 시각장애인의 전화였습니다.
“거기 ‘부름의 전화’ 맞죠? 거기서는 봉사자를 부르면 무보수로 도와줍니까?” “예”
“정말 무보수로 해 주는거예요?” “예”
그렇게 서너번을 묻는 겁니다.
나중엔 화가 나서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그렇다니까요”
그랬더니 제 말에는 대꾸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지상천국일세”
그리곤 그냥 끊어버려요. 그 장애인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죠. 그래서 아마 그렇게 묻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얼마나 소외되고 어려운 지경에 장애인들이 있었으면 그런 말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자원봉사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자원봉사 이론에는 ‘자원봉사는 아름다운 것, 열매가 있고 기쁨이 있고 자기 만족도 있다’라고 배우셨죠. 하지만 자원봉사를 나가보면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봉사에 나갔는데 봉사를 받는 분들이 당연히 “고맙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이게 아니더라 이겁니다. 저희 ‘부름의 전화’ 같은 경우는 연중무휴로 전신 하반신 마비 환자들이 “저요. 병원에 가야 돼요”라는 전화가 가장 많이 옵니다. 그래서 찾아가면 얼마나 고마워요. 그런데 나갔더니 ‘고맙긴 뭐가 고마워’ 10번을 잘해도 1번만 비위에 거슬리면 욕을 들어먹기 일수입니다.
어떤 사람이 똥걸레를 빨면서 ‘신난다 거룩하다’ 하면서 하겠습니까. 저는 솔직한 말로 ‘부름의 전화’ 운영하면서 저보고 “걸레 치우러 와라” 그런 전화 받으면 이걸 누굴 보내지 아무도 없으면 ‘에이구 잘못 걸렸네’하고 갑니다. 싫은 마음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 병이 됩니다. 속으로는 아니면서 말이죠.
한번은 전화가 왔습니다. “나 전신마비인데 우리 집에 와서 꼭 좀 도와주세요. 만나주세요”라는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할 일이 뭐냐” 그랬더니 “나 영세민 좀 만들어 달라” 그럽니다.
“자원봉사자는 자원봉사일 뿐이에요. 그런 능력 없어요”라고 말하고 그 분을 찾아 면목동에 갔는데 다 쓰러져 가는 집이 있더라구요.
“여기 전신마비인 분을 만나러 왔는데 여기 맞아요?”하고 물으니, 그 집이라는 겁니다.
제 눈에는 거기가 화장실인줄 알았어요. ‘절대 저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주위 분들이 저기 있으니까 들어가 보라고 하니 또 안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문 열고 들어가보니 컴컴한데 황소만하고 허연 사람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역한 냄새 때문에, 같이 간 구조대원은 벌써 들어갔더군요. 우리 활동자가 변을 치우고 다 하는 동안에 물 떠다주고 빨래를 하려고 하는데 그 빨래를 도저히 빨 수가 없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저는 아마 천벌 받을 겁니다.
그런데 청소를 하고 들어가 보니까 냄새가 안나는 겁니다. 코가 면역이 돼 버린겁니다. 그 후에 “왜 영세민이 못 됐냐? 부모님은 어디갔냐” 묻는데 당연히 전신마비라면 손도 못써야 하는데 이 사람이 손은 멀쩡하더군요.
“그러면 밖에까지 기어나가서 볼 일을 봐야 할거 아니야” 했더니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굳어버렸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한 사람이 없거든요. 더구나 봉사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거든요. “우리 갑니다” 하니까. 아무 대답이 없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왜 안해?” 그랬어요. 그러자 깜짝 놀라더군요. “안해? 그래 안해, 그럼 할 때까지 나 여기서 버티고 서 있을건데” 그러자 “고맙습니다”라고 작게 말하더군요. 내가 “더 크게 안해?”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크게 “고맙습니다”하더군요. 그때 제가 끌어안았습니다.
“양승제씨 고맙다는 말하는데 누가 돈 달래요?” 그런다고 내가 변화되는건 하나도 없다. 네가 변화된다. 우리는 더불어 살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이야. 그러면 고맙습니다하는 말은 돈도 안드는데 말을 왜 아끼냐. 우리는 지나가다 손수건 흘리면 따라온 사람이 주워주면 본능적으로 고맙습니다 하지 않냐?

자원봉사는 내가 먼저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라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먼저입니다. 이웃이 먼저라면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집 애들이 문제 생겨요. 우리가족이 첫째예요. 나는 없고 이웃만 있는 것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러나 나만 생각하지 말자는 거예요. ‘나 열번 생각할 때 이웃을 한번 생각하자’는 거예요 10분의 1만 이웃을 생각했어도 우리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됐을겁니다.
우리 서울에서만 중증 장애인 3700여명이 저희들을 부릅니다. 그러나 한달에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이 400여명 정도입니다. 활동하시는 분들이 무척 바빠요. 하지만 활동자들 집에 들르면 “댁의 남편 출근 잘 하시나요? 애들은 문제없나요?” 그거 먼저 묻습니다. “혹시 활동하시는 날만이라도 반찬 더 맛있게 하고 정성스럽게 하시구 가족들 먼저 챙기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
자원봉사한다고 애들, 남편 밥 안 주고 집안에 신경 안 쓰고 그러면 분명 잘못 된 것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6시에 일어났으면 5시에 일어나서 봉사를 하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이 시간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래서 아깝고 아픔도 감수해야 하지만 그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 그런 각오를 가지면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약속은 자원봉사의 생명
중증 장애인은 컴퓨터가 필수적입니다. 장애인이 중고컴퓨터를 구하려고 하면 너무 비싸요. 그런데 누가 준다고 가보면 286을 줍니다. 그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어떤 기업체에서 중고컴퓨터를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586 아니면 안 받는다고 하니까 586이라는 겁니다. 60대를 준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두 시간동안 2700명중 60명을 골랐어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요. 전화를 해서 “그때 주신다고 하신 컴퓨터 어떻게 되셨는지?”하니까
“그런데 몇대 준다고 그랬죠?”라며 저에게 반문하는거예요. “60대요”라고 했더니 60대는 안된답니다. “정해놨는데 어떻게 하죠”라고 물으니 50대 준다고 합디다. 그래서 10명을 추려 또 기다렸는데 또 소식이 없어요. 장애인들이 너무 안타까워 전화를 했더니 “곧 드릴께요”라며 “우리가 내일 1시쯤에 50대를 가지고 갈께요”라고 약속을 하는 겁니다. 그 다음날 모학교 교실에 두려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더니 “아 그렇죠 지금 갈께요”하는 거에요.
결론은 왔는데 컴퓨터를 싣고 오는 차를 보고 기절 할 뻔 했어요. 새까만 먼지가 뒤덮히고 난장판이 된 컴퓨터를 교실로 옮기는데 옷이 다 새까맣게 되고, 순간 ‘구도자의 심정이 이럴거다’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로 “고맙습니다” 했습니다. 속으로는 ‘고맙긴 뭐가 고마워 이거 도로 가져가!’ 하는 마음이 일더군요.

고정관념부터 깨야
고정관념을 깨야합니다. “양로원가서 뭐 할겁니까?” “어깨 주무르고, 팔 주무르고 손톱 자른다” “고아원가서 뭐 할겁니까” “애들이랑 논다”고 합니다. 신입자원봉사자들 애들 보러 간다는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하늘에서 애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애를 그렇게 많이 봅니까? 이런 고정관념은 버리세요. 내가 언제 당신이 필요합니까?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부를 때 내가 “네”라고 대답해야지요. 그리고 종교가 뭐다. 우리는 원불교다. 기독교다 이런거 따질 것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분이 길거리에 쓰러졌는데 그 분한테 종교가 뭐냐고 물을거에요? 먼저 일으켜야죠. 그런데 종교적으로 너무 따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종교를 초월해야 합니다. 불쌍해서 돕는 것도 아니고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선 종교를 초월해야 합니다.
우리 활동자들이 시각 장애인 집에 갈 때가 있어요. 장애인이 어두운 곳에 있으니까 들어가면서 활동자가 “어두운데서 뭐하세요?” 하면서 불을 켭니다. 이게 고정관념이에요. 시각장애인은 불을 끄나 켜나 같지 않습니까. 제가 “시각장애인에게 밥 먹여주지 말아라”하는 것이 시각장애인에게 봉사하러 가는 활동자에게 제일 먼저하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손이 없냐? 입이 없냐? 이겁니다. 그런데 텔레비젼에서 시각장애인에게 밥 먹여 주고 씻겨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하니까 연세가 50이 넘은 분이 칭찬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자원봉사자한테 ‘니가 시각장애인들 바보로 만드는구나’했습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눈이 없으니까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그분들이 왜 눈이 없어요. 단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게 뭡니까? 네 손이죠. 눈 안보이면 이거 모르죠? 이게 고정관념입니다. 눈 없으면 이것이 안 보이는 줄 아는데 만져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랑 종 하나 들고 달리기를 해 보세요? 정상인보다 더 잘 달립니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부터 시각장애인들을 ‘보는 사람’으로 생각하십시오.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하는거다”, “장애인은 어떻게 하는거다”, “봉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중요한 것은 상대방 눈높이에 맞춰서 “제가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당신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겠습니까” 물어보고 그대로 하는 겁니다. 자원봉사 교육에서 시각장애인과 팔짱 끼고 가라고 배웠다고 장애인이 손 잡자고 하면 꼭 팔짱 끼고 가야한다는 분이 있어요? 누가 도대체 장애인입니까? 이렇듯 모든 것을 우리 프로그램에 일방적으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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