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 신종 원음(圓音)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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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 신종 원음(圓音)에 대하여
  • 전재만
  • 승인 2002.04.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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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교수



원음이라는 말이 결국은 종소리가 화엄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탑
오늘 성덕대왕 신종 원음(圓音)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어제 다녀온 곳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제 익산 미륵사를 학생들과 다녀왔습니다. 미륵사에 도착하여 예정에 없던 용화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용화사 아시죠?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을 때 신라의 문화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지만 항상 백제문화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백제의 수도가 공주에서 부여로 내려오신 것은 모두 잘 알고 계실겁니다. 확실히 익산이 수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무왕이 천도를 시도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용화산 정상에서 미륵사터를 보니 정말 대단하더군요.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있고 금강이 흐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벌판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륵사터가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은 아니지만 나지막하게 구릉이 자리하여 자리가 참 좋더군요.
익산에 왕궁리 석탑이 있지요. 통일신라시대 것이라는 학자도 있고 고려시대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백제시대 탑으로 보입니다. 석탑연구가들은 고려시대 것이라고 하는데 돌들의 구성이나 비례를 보아서는 백제시대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전국을 돌아다녀 보면서 본 탑 중 가장 아름다운 탑이 왕궁리 석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왕궁리 석탑에서 금판 금강경이 나왔다는 겁니다. 금판 금강경이란 얇은 금판에 금강경을 새긴 것을 말하는데 백제가 금강경과 인연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600년경에 금강경이 탑에 봉안되었다니? 이 탑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사시는 집인데 이 금강경을 가지고 법신사리를 모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점을 보더라도 백제문화의 수준을 짐작하시겠죠. 반면에 신라에서는 금강경을 넣은 탑이 없습니다. 백제의 문화가 고도로 발달했고 정신적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이 왕궁리 석탑에서 나온 금판 금강경이 보여주는 겁니다.
한국문화를 이해하는데 고구려와 백제를 모르고 신라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문화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황룡사를 지을 때 백제 기술자들이 가서 지은 이야기나 백제 미륵사를 지을 때 신라 기술자들이 갔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

성덕대왕 신종은 771년 혜공왕 때 만들어졌습니다. 원래는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위해 만든 것인데 경덕왕 때 마무리를 못해서 혜공왕 때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성덕대왕 신종이 만들어질 때 불국사와 석굴암이 만들어 졌습니다. 당대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시겠죠. 종이라는 것은 소리를 내는 기능적인 것인데 이 성덕대왕 신종은 예술로 승화를 시켰습니다. 종의 곡선과 무늬 그리고 비천상은 아주 유명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우면서 소리가 힘찬 종은 이 지구에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런 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틀어서 단 하나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걸작품이란 다시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위대한 것입니다.
성덕대왕 신종은 크기도 크기지만 형체가 아름답고 소리의 여운이 깊기로 유명합니다. 저는 이 종을 볼 때마다 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까? 모든 면에서 완벽한 종을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성덕대왕 신종에는 명문이 천자정도 쓰여져 있는데 그 첫구절이 일승지원음(一乘之圓音)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삼승(三乘)이라고 성문·연각·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불교를 잘 몰라서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옮기면 불경이듯이 이 성덕대왕 신종을 통해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달하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종소리는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圓音(원음)은 완전하다는 뜻인데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음에 관심이 생겨서 원음에 대해서 어떤 스님에게 여쭈어보았더니 원음에 대해서 연구를 안 하셨는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원음을 추적하여 보았는데 불경에서도 원음이 별로 없더군요. 어떤 경전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데 화엄경과 능엄경 등에서 몇자 나옵니다. 그런데 원효 스님이 쓰신 대승기신론에 보면 원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방에 두루하여 원음이라 한다’고 원효스님이 말씀하셨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원효대사를 위해 비(碑)를 세웠다는 겁니다. 비라는 것은 왕 중에서도 업적이 뛰어난 왕에게만 세우는 것인데 비를 세워주었어요. 원효대사는 파계한 스님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말도 안되는 일인데 그 당시 신라 사람들은 원효보살이라고 하여 비를 세워주었던 겁니다. 그만큼 수준이 높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음의 뜻을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었던거지요. 또 원음이라는 이야기가 화엄경에 나옵니다.
일단 원음에 관심을 갖고 이것 저것 문헌을 뒤지니 조금씩 줄거리가 잡혀나가서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원음이라는 말이 결국은 종소리가 화엄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는 곧 진리의 소리를 뜻하며 성덕대왕 신종은 곧 부처님의 몸을 뜻하는 것이구나’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문화 사랑

일승지원음(一乘之圓音)은 중생을 제도하는 아름다운 소리인 것입니다. 아름답고 우렁찬 소리를 내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 종을 만드는데만 20∼3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때의 억불정책 때문에 이 종도 녹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종을 보고 있는 것은 세종대왕 덕분입니다. 세종대왕이 “이 종은 녹이지 말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라고 합니다. 성덕대왕 신종을 보십시오. 신종에 새겨진 꽃잎들,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비천상, 종을 치는 자리에 있는 연꽃 무늬를 보십시오. 현대 과학으로도 이만한 크기의 종을 만들어 이런 소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거기다 예술적인 면까지 가미했으니 전무후무한 걸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모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일할 때 이 신종을 가장 빨리 지나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한국인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빨라서 인지 금방 보고 가 버리거나 사진이나 찍고 가는데 신종 앞에서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서양인들과 일본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신종을 정말 경이롭게 바라보며 위대한 걸작임을 알아봅니다. 제가 한국인의 정서를 생각했을 때 언제부턴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일제 수탈기와 전쟁, 그리고 미국의 문화가 흡수되면서 특히 미국의 문화를 통해 얻어진 사고방식이 우리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잃게 한 것 같습니다.
이 성덕대왕 신종은 불교정신을 그대로 담아낸 진리의 소리인데 그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겁니다. 저도 아직 체계적으로 불교를 공부하지 못해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한 예로 기독교에 계신 분이 차(茶)문화를 공부하려고 하니 도저히 불교를 공부하지 않고는 모르겠더랍니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거기에 배어있는 정신을 이해해야 하고 이해가 되어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강의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 전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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