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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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체험
  • 전재만
  • 승인 2002.05.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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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 손정윤 법사


도덕성이 바탕되는 공부
안녕하십니까.요즘 살면서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것이 우리 인
간세상의 모든 일이 도덕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일은 다 잘못
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가슴속에 절실히 느껴집니다. 가령 오
늘날 삶의 현상을 놓고 보면 정치에 있어서도 도덕성을 바탕
하지 않은 민주정치도 실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독재하고 사회
개혁을 한다는 것도 도덕성에 바탕하지 않아 엉망이 되고, 교
육, 종교, 기업도 그렇고.. 모든 인간사회가 도덕성이 바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그럼 도덕성이라
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역시 마음공부라는 생각이 듭니
다. 세상 모든 일에 있어 결국은 마음공부를 재대로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공부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일 그리기
어려운 그림과 제일 쉬운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제일 그리기
쉬운 그림은 도깨비라고 합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까
요. 아무렇게나 그려도 시비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일
그리기 어려운 그림은 사람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가령 대종사
님 영정을 그렸죠? 그거 참 많이 고친 것입니다. 영정을 그린
사람이 여러분들한테 조언을 구해서 최대한 노력해서 그렸는
데 막상 총부 어른들이 보시고 아니다라고 해서 그 사람이 많
이 힘들었습니다.우리 마음공부가 성리공부라고 하는데 그런
강의 법회도 많이 보시는데 이 성리공부는 도깨비 그림을 그
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리공부는 항상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성
리가 무엇이냐에 대한 물음에 있어 답은 다 다를 것입니다. 광
주 비엔날레에 갔었는데 북한 화가가 그린 그림과 남한 화가
가 그린 그림을 봤습니다. 많은 차이가 있더군요. 북한 그림은
사진입니다. 북한에는 개인감정 말 못하죠? 공산주의, 소위말
해서 김정일, 김일성 동지 하면서 감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
리 나라 화가가 그린 그림은 개인의 감정이 담겨있어 살아있
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라는 것도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
니다. 이렇듯 성리공부는 도깨비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것입
니다.
성리(性理)는 우주 만유의 생명력
저는 성리는 우주 만유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한테
는 사랑과 조화입니다. 이것이 생명력입니다. 이 생명력이 성
리입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울면 주위 사람들은 시끄럽고
짜증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기 엄마는 그 소리가 짜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 우는가에 관심을 가집니다. 만약 배탈났
는가. 귀저기 갈아 달라고 하는가, 아기를 관찰하고 압니다. 그
우는 아기를 어머니는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그 자리가 성리입
니다. 우주만유는 사랑과 조화이고, 인생에 있어서는 지혜와 용
기가 성리입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예전에 잘못된 것을 다음
에는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 점에 지혜가 부
족하여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점이 너무 많아요. 또 사람은 용
기가 있어야 합니다. 성리의 용기는 잘못된 것을 끊는 것이 용
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자식의 잘못된 점도 감싸기
만 하고 끊지를 못합니다.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점을
끊는 용기가 성리입니다. 우리는 사슴은 착한 짐승이며 늑대
는 못된 짐승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늑
대가 사슴을 많이 잡아먹어 늑대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사슴만
많아지자 얼마 안되어 벌거숭이 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먹고
먹히는 것, 새로 태어나서 죽는 것이 우주 만물의 조화입니다.
제가 공부하다가 화두가 생겼습니다. 왜 잡초는 거름도 농약도
안 해도 잘 크는데 곡식은 왜 그렇지 못하나? 그러나 ‘잡초
다 곡식이다’하는 구분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 진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
다’ 그러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악역(惡役)
과 선역(善役)이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은 드라마입니다. 단지
역할을 맡았을 뿐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거기서 선역과 악
역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해결되더
군요. 바로 우리 인간의 분별심입니다. 지혜와 진리가 하나라
면 설법이 됩니다. 진리와 내 몸이 하나가 되면 개유청정(盖有
淸淨)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와 내 마음이 하나되면 선(禪)이
됩니다. 좌선한다고, 무조건 앉아있다고 해서 선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성리가 도를 깨친다 진리를 깨친다는 것’은
우리가 일단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고, 우리 원불교에
서 말하는 심법(心法)까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실천만 가지
고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으로는 미워하면서도 상대
가 좋아하는 일을 해줍니다. 그것은 위선입니다. 체면을 앞세
워서 행하는 것이죠. 그래서 행동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꼭
심법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리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얼마 전 대각개교절을 맞았죠. 대종
사님이 진리를 깨치고 하신 말씀이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성
리품 1장에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
서품 1장에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요 만법(萬法)이 한
근원(根源)이로다…’ 이 2가지입니다. 또 서가모니 부처님께
서 깨치시고 하신 말씀이 있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
다. 대종사님 말씀하신 것과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어떻게 공
부할 것인가가 우리가 대각개교절을 맞아 뜻 있게 보내는 것
입니다.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 분명
구름이 걷히면 햇빛이 빛나고 한밤에도 구름이 걷히면 보름달
이 비치는 것입니다. 만상이 드러나죠.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
입니다. 바로 내 마음속에 번뇌망상이 걷히면 분명히 밝은 지
혜가 빛납니다. 하늘에 구름이 걷히는 것, 내 마음속에 번뇌망
상이 걷히는 것입니다.요즘 사회가 혼란스럽죠. 부정, 부패가
걷히면 사회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별로
생각을 안 해 보셨죠? 저는 이 대목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
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회를 떠난 공부는 아무 소용
이 없습니다. 하늘에 구름 걷히는 것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번뇌망상을 걷어내는 것은
내 공부를 하는 것이죠. 사회의 부정, 부패를 걷어내는 것도 인
간이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독을 걷어내는 것을 하는 게 부
정, 부패를 걷어내는 것보다는 쉽죠. 어쨌든 우리가 관심을 가
지고 이 사회에 부정, 부패를 걷어내는 공부를 해야합니다.요즘
정치인들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더 반성해야 할 사
람들은 종교인입니다. 타종교보다 원불교에서 반성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정치인들 지역감정, 지역통합을 얘기하는데 어렵
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정치인들 욕심 버리면 다 됩니다. 성
리공부는 내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합니다.
또 이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죠. 이 자리는 공
간이죠. ‘나’는 주체성, 창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이 하
는 것을 그대로 하면 흉내내는 것이죠. 요즘 모창가수가 많잖
아요. 재미는 있어도 잘하는 것은 아니죠. 꼭두각시에 불과하
죠.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해야 하는 것입니다. 15년 전부
터 저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걸어다녀도 날아다니는 것 같이 좋습니
다. 그러므로 지금 이곳에서 해야 합니다. 대구에 항타원님이
계실 때인데, 항타원님께서는 육일대제 3일전에 꼭 청소를 합
니다. 더운데 하수구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마침 옆집에 사는
함노봉 선생이 그 모습을 보고 선녀 같다고 하면서 깊은 감명
을 받았다고 합니다. 밑에 부교무도 있고 많은 사람에게 시켜
도 될텐데. 본인이 직접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교
하고 대구, 신촌 교당 회장 하시고 화곡교당까지 창립주하신
것입니다. 항타원님도 하수구 청소도 청소지만 당신이 성리공
부한 것입니다. 단순히 청소부가 했다면 감명을 못 받는 것이
죠. 어디서든 자기가 있는 그곳에서 성리공부를 하는 것입니
다. 내 공부는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창조성이 생깁니
다. 항상 각자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고 공부의 중심입니다. 이
것을 표준해야 합니다.
자유 평등 평화 자연
제가 성리공부를 체험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자유
를 체험하고, 평등을 체험하고, 평화를 체험하고, 자연을 체험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밖으로 자유가 있고 내 안으로
자유가 있습니다. 밖으로부터의 자유는 남의 가슴을 밟지 않는
것이고, 내 안으로부터의 자유는 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아집에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형제
간에 싸우는 것도 아집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독단이죠. 불
교에서는 법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나의 잣대
를 가지고 평가합니다. 이 잣대는 자기 자신에게만 맞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한테만 써야하는데 상대에게도 쓰
려고 합니다. ‘세상에 나한테 그럴 수 있나’하는 것은 내 잣
대를 상대에게 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지가 그럴 수
있나’를 ‘아 그럴 수도 있겠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을 가지면 이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집에서 벗
어나는 공부가 자유를 얻는 공부입니다. 다음은 평등을 많이
씁니다. 예쁜 짓하는 사람이 나한테 이쁜 것이지 다른 사람에
게도 이쁠까요? 내 자식도 내가 보기에는 이쁘지만 남이 봤을
때 이쁩니까? 내가 이쁘니까 남도 이뻐해야 한다며 바로 이것
이 차별입니다. 선악미추의 잣대를 벗어나는 것, 이것이 본래
평등한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그 다음 평화는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길만한 힘이 있지만 양보하는 것이 공부죠.
어린애들은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합니다. 철이든 사람은 양보하
므로 평화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이기려고 하면 조바
심이 생기고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남에게 이기고 진다는 마
음을 놓아버려야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평화를 체험하
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연이 흐르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요즘 까치가
문제죠. 전선줄, 원자력 발전소 등에 많은 골칫거리죠. 까마귀
는 나쁜 것, 까치는 좋은 것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분별심이
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습니다. 절
대, 진리가 필요없는 것은 세상에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속담
에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있죠. 저는 이말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만물은 다 진리에 맞게 사는 것
이니까요. 우리가 둥근 돌만을 가지고 성을 쌓을 수 있을까요?
모난 돌과 자갈, 둥근 돌이 어우러져서 성이 쌓아지는 것입니
다. 이 세상의 인간은 아무리 잘 나봤자 망망대해에 떨어지는
한 가닥 빗방울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의 흐
름에서 계절의 변화에 맞게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여름이 고
맙고 여름을 생각하면 추운 겨울이 고맙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생로병사에 따라야 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은
인간사에서 흥망성쇠(興亡盛衰)입니다. 우주의 성주괴공이 있
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고, 인간사에 흥망성쇠가 있는 것이 인
간의 진리입니다. 이것이 자연과 내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
다. 정산종사님께서 도를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나이
가 되도록 지금의 나이를 느끼지 못하고 애들을 만나면 하나
되고 그럽니다. 참 황당한 얘기죠.얼마 전 목욕탕에 갔는데 어
떤 아버지가 딸애를 데리고 왔어요. 그 애가 남자, 여자 구별을
모르니까 괜찮은 것입니다. 한 두 살 더 먹었다면 다르겠죠.
그런데 그 애가 저를 쳐다보면서 웃습니다. 그걸 보고 이 애랑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처럼 인생은 재미있는 것입니다. 재미있죠? 공부 잘 합시다.
<정리: 김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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