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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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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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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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서 심인으로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진행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경제발전을 통한 물질적인 변화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는 세상의 중심이 ‘신’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근대사회에 들어서서 그 중심은 ‘국가’로 대체되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은 모두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도 우리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적 이익이나 권리는 당연히 제한될 수 있다고 믿었다. 국가가 명령을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인식의 틀이 다시 변하고 있다.


국가를 대신해서 시민사회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시민사회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시민은 국민과는 다른 개념이다.


국민이 국가의 틀 속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시민은 공공영역의 틀 속에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발생적으로 ‘부여’되는 존재이지만 시민은 의지적으로 ‘구성’되는 존재이다.


의지적이라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신념과 뜻을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세상을 균형적으로 밝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뜻도 존중할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구성된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계발되고 훈련된다는 의미이다.


시민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참여’와 ‘훈련’이 필요하다. 일정한 나이가 되어 투표권이 생겼다 해서 아무나 시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민’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공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존재인 ‘대중’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다.


시민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공론장’을 구성하고 논쟁에 참여하며 일상적인 삶 속에 작동하는 사회, 정치의 문제점들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한다.


시민사회는 그러한 시민적 참여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중심이 시민사회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서 ‘시민’을 우리의 궁극적인 가치로 볼 수는 없다.


개인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의지가 맹목적으로 존중될 수는 없다. 참여와 훈련도 무조건 실천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시민사회는 심인(心印)사회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마음에 진리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마음도장은 우리가 공중사에 있어 사(私)없는 마음으로 공정하게 처신할 때 나타난다. 진리의 인증은 곧 내 마음을 따라 밝게 드러난다. 그 누구도 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


시민은 국가가 아닌 큰 개인을 드러내는 사회발전 모델이다.


심인은 무아(無我)에 바탕하여 봉공을 하는 차원 높은 사회윤리이다. 시민사회는 곧 큰 나를 드러내는 사회이지만 진정으로 큰 나는 곧 무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를 넘어 일원주의에 바탕한 ‘심인사회’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상(相)없는 공도인이 되어야 한다. 구인선진의 백지혈인은 사무여한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선진님들의 정신을 살려 ‘심인’의 사회윤리를 새롭게 깨달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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