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칼럼-이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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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칼럼-이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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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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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가 살아나려면
중학교 시절 나는 영어공부가 재미있었다. 발음도 좋다고 하고 성적도 좋았는데, 고등학교 때 시골학교에서 올라온 영어선생님의 발음이 촌스럽다고 느끼면서부터 영어성적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교화가 어렵다고 한다. 교화가 살아나야 한다고 중앙 행정부처나 교구별로 교화 살리기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교무들은 교법의 시대화와 생활화, 대중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머리가 무겁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주력하고 있는 면들을 보면 정작 비중있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놓고 주종과 본말을 가리지 못한채 지엽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교단 발전의 과정을 보면 일체 생령을 제도하고자 법을 펴신 대종사의 교법을 스승을 대신하여 전하고, 교단의 주법이신 종법사의 명을 받아 실행하는 전법사도로서 각 교당과 기관에서 법의 지도를 하는 교화자를 중심으로 소박하고도 모범적인 교단의 모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감사생활과 진급을 위한 정진 적공이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일은 고학력시대가 되면서 학식위주의 가치관으로 교화자를 평가할 뿐, 받아야 할 지도를 받지 않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만한 물질사회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삶을 불고하고, 어느 종교의 성직자도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봉공을 감수하며 교법을 전하기에 24시간을 근무하는 원불교 교역자의 삶을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무의 힘은 영생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교무를 평가하는 교도들이 많아지면서 교당 교화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웃종교로부터 ‘진리의 특공대’로 불리우는 교무의 추진력에 제동이 걸리고, 교무에게는 교도가 요구하는 의무들이 많아졌다. 소태산 대종사는 아무리 못났더라도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사람으로 전무출신을 챙기셨고, 스승의 허물이 보이거든 자신의 박복함을 탓하라셨다.
여행을 하는 사람이 안내자의 안내를 따르듯, 전법사도로서 교법을 전하는 교화자의 지도를 믿고 따름이 법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에 바탕하여 교법정신을 실천하는 새 시대의 진정한 주인들이 많아질 때 교화는 자연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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