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택 교구장의 교리로 풀어본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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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택 교구장의 교리로 풀어본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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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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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사진
원불교 서울회관 정문 건널목을 건너면 시멘트 담장에 걸려있는 사진 몇 장이 있다.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다니는 길목이라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여름부터이니 아마도 상당한 기간 그렇게 붙어있었다. 그러나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요즘은 어쩐지 마음이 걸린다.
지난 8월에 회관 정문 앞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MBC 아나운서였는데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아나운서의 이름은 ‘정은임’, MBC FM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였다. 생전 활동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각종 매스컴에서 발췌하여 놓았다. 그 게시물로 보아 이 아나운서는 왕성한 활동을 한 인물임이 분명하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쓸쓸하고 황량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나는 종교인으로서 이분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게시물을 철거하고 간단한 천도의식을 하고자 마음을 가졌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영가가 외로이 영하의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를 죽음으로 이끈 차들이 씽씽 달리는 가운데 고혼이 되어 떠돌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을 가지고 그 게시물을 유심히 살피다 보니 발견되어지는 것이 또 있었다.
나는 팬들이 이렇게 게시물을 한번 부착하는 일회성 행사로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이제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그만 철거하여도 될 것이라 여겼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 내용을 차분히 관찰하여 보니 지난 12월에도 여기를 다녀가며 또 다른 내용을 추가해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 게시물 끝에 ‘당신의 영원한 팬 ○○○’라고... 이글을 읽는 순간 ‘아! 일회적이 아닌 팬들이 계속적으로 이 게시물을 관리하고 있구나! 최근에도 여기를 다녀갔으니 이 게시물을 철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 생각으로만 손을 댔다가는 뒤에 어떤 오해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론이 여기에 도달하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저 게시물들이 열반인에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여기서 사고를 당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는 일조를 한다. 또한 팬들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추모의 마음과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정성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적으로 볼 때 혹여나 떠나는 고혼에 착심만 조장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된다. 자기를 알리는 광고가 대중에게 노출될 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연 모습이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영혼은 더욱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평소에 대중의 인기와 더불어 생활을 한 사람은 열반 후에도 그 습관을 졸지에 끊기는 어려울 것이며 더욱이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열반을 한 경우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의 습관 따라 대중에게 알리는 저 게시물에 자연 마음이 갈 것임이 분명하다. 그 사람을 위한 정성과 마음이 오히려 열반인의 전정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본의와는 전혀 다르지 않을까?
추모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생사의 이치를 안다면 교통사고의 현장에 저렇듯 오래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오늘도 그 건널목을 건너며 가신 분을 위해 심고를 올린다.
‘행여 이곳에 머무르거나 걸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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