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택 교구장의 교리로 풀어본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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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택 교구장의 교리로 풀어본 세상만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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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통한 새세계 건설


지난 4월 28일은 원불교가 태어난 개교기념일이었다. 원불교 창립자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 20여년 구도 과정 끝에 비로소 대각을 이루신 날이라 대각과 개교를 동시에 봉축하고 있다. 우리 서울교구에서는 각 교당별로 교단 최대 경절인 대각개교절을 봉축하는 다양한 법요의식들을 거행하였다. 나는 이날을 보내면서 ‘감사’를 통한 새 세계 건설에 우리 함께 매진하자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며칠 전에 감기 치료차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치료가 아니라 일을 피해서 피경을 간 것이다. 일 속에서 살다보면 공부는 일속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피로에서 오는 감기는 일 속에서 치료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병원에 누워 있다보면 간호사들이 자주 왕래를 한다. 사실 별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들락날락하면서 안부를 묻는다. 팀이 바뀔 때마다 방문하여 안부를 묻는다. 처음은 적응이 되지 않아서 성가시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들의 의무요,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누구나 들어와서 무슨 말을 하던지 나는 언제나 “감사 합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사실 이런 경우 대부분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진심으로 일어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대화가 몇 차례 반복되는 과정에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를 대하는 간호사들의 자세가 형식적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생의 기운임을 느끼게 되었다. 저 쪽에서 상생의 기운을 보내니 나는 또 다른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마음이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니 내가 기거하는 병실이 바로 낙원으로 변하고 편안한 생활이 지속되었다. 아프고 짜증나는 병실이 아니라 감사와 윤기가 흐르는 병실로 변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실천에서 ‘감사’라는 단어의 위력을 다시 새롭게 느꼈다. 그리고 대각개교절에 대종사님이 밝혀주신 은혜의 사상이 얼마나 현실 생활에 유익을 주는가를 체험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디지털 지식사회이다. 그런가 하면 원리적으로는 개벽의 새 시대이다. 개벽의 새 시대는 상생의 살리는 기운이 주가 되는 시대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하신 깨달음은 우주에 충만한 살리는 기운, 즉 은혜의 윤리를 밝히신 것이다. 우리는 대각개교절을 맞이하여 이런 윤리를 새롭게 인식하여 그것을 실천할 다짐을 해야 하겠다. 그 실천은 바로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다. 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상생의 기운을 우리가 체 받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감사는 우리 현실에서 은혜의 실천이며, 나아가서 살리는 기운의 활용이다. 감사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상생으로 만든다. 감사는 막힌 기운을 통하게 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감사가 얼마나 위대한가! 과거 자기가 지은 숙업을 청산하는 것도 감사이다. 상극의 기운을 푸는 것도 감사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푸는 것도 감사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내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고 상대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소태산 대종사님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길이다. 이번 대각개교절을 기해 감사 실천으로 은혜 충만한 생활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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