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교수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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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교수의 세상읽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07.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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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교화를 생각합시다



지난번 청운회 수련회에서 ‘종교의 기호학’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의 내용은 교리연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화연구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는데 강연이 끝난 후 모임에 참석했던 몇 분들로부터 평소 하고 싶은 말들을 속 시원히 다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 받았다. 9인 연원달기 운동을 시작으로 요즘 서울교구 산하에선 교화 활동이 활발하고 있는데 이 영향 탓으로 본다.
필자는 평소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존경받는 길이 과연 무엇일가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그 중 하나로서 자식들을 ‘경제적으로’ 교육시키는 일을 꼽았다. ‘경제적’이라고 하니까 돈을 절약하는 일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개념이 아니라 적게 공부하고도 공부한 결과가 많이 나타나도록 지도하는 길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수양공부는 이런 경제적인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양공부야말로 공부한 시간에 비례하는 비경제적 영역일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세상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도 공부를 좋아서 한 적이 별로 없는 듯싶다. 하물며 창의성이라곤 전혀 없고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암기와 이해 위주의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자식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면 그네들에게 그 소리가 제대로 먹히겠는가? 이 경우 현명한 부모의 역할은 무조건 공부를 많이 하라고 주문하는 것 보다는 자식들이 스스로 나서서 공부 하게끔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실 동기부여는 교육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명제이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도, 또 힘들지만 마음공부에 정진하는 이유도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식들에게 부모가 말해줄 수 있는 동기는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멋있게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멋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 같은 현실적 수단들이 필요한데 그런 수단을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고, 너희들은 그 흐름을 타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말해 주면 자식들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제 교화의 문제로 돌아가서 ‘경제적’이라는 개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 교도들에게는 하나의 자부심이 있다. 가장 선진적인 교리를 갖고 있는 종교에 우리의 신앙심을 의탁하고 있다는…. 그런데 이런 앞선 교리를 우리 주위에 전파하자고 권선하면 이내 소극적이 된다. 왜 그럴까? 상품 판매에 대입하면 좋은 제품(교리)을 만들고서도 이를 팔지 않는(교화하지 않는) 일에 해당하는데 상품 질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되지만 상품의 질은 좋은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그것은 마케팅 기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지 않으면 교화가 힘들어진다. 교인들이 열심히 교화를 하더라도 그 효과가 미미해진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교화하는 사람조차 이내 교화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즉 비경제적 교화의 악순환이 되고 만다. 이 경우 경제적 교화를 하기 위해서는 교화의 토대를 바꾸어주어야 한다.
씨앗을 심더라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토양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토양도 있다. 지금 우리 교단이 처해 있는 문제는 씨앗이 뿌리내리는 토양에 물이 심히 말라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 물을 공급해 주고 비료도 잘 주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씨앗이 잘 자라는 것처럼 교화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역할이 물과 비료를 제공하는 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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