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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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행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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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신 교무의 산속이야기
가을이 내립니다. 국화향기 그윽한 뜰에 서서 뭉게 뭉게 흘러가는 흰구름을 바라봅니다. 구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바람과 손잡고 곱게 물드는 산을 넘어 풍요로운 가을 들판을 구경나온 것일까요? 자연이 내어주는 가을의 선물은 참 아름답습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절로 가슴이 툭 트이고 행복해야 할 계절입니다.
그런데 나는 가을을 맞이하며 답답함과 막막함이 가슴 한켠에 쌓이기 시작하더니 온 몸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숨이 잘 내리지 않는 것은 분명 기가 막혀버렸나 봅니다. 그 답답함을 싸안고 총부 총단회에 갔을 때 선배 교무님이 두 손을 꼬옥 잡아주며 “그대는 산소 같은 여자야! 어려움 많을 텐데 미소를 잃지 않잖아?” 그랬습니다. 돌아나오는데 왠지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산소! 미소! 산소 같은 여자! 본래의 모습일 텐데 무언가에 막혀 있구나 싶고 선배 교무님의 그 한 말씀이 후배에 대한 따뜻한 사랑임을 알았을 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20여년 전 월간 ‘원광’에 근무할 때 교단 초창기 선진님들의 삶을 정리하며 개척교화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야만 좀 철이 들고 교단을 알고 거기에 보람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후 동창교무님들이 교당을 지은 봉불식에 꽃을 꽂으며 교당을 지어 보고 싶은 꿈을 또 꾸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서원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문제를 푸는 일도 해답도 모두 내 안에 있는 것이겠지요.
10월의 어느 날 후배 교무님의 초대 전화를 받고 길을 나섰습니다. 일상을 좀 떠나 보고 싶었지요. 삼밭재. 그곳에 가서 대종사님 구도의 정신을 다시 느껴보고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안교당 한배예술단 가족이 삼밭재에 올라 기도하고 바라본 하늘에 원광이 어린 것을 보고 국제 산상 음악회를 계획했다는 군요. 꿈을 실현하는 일, 그 일을 이루기 까지 어려움이 많았겠지요. 햇살 쏟아지는 가을의 산자락에서 가슴을 열어주는 아름다운 음악회였습니다.
음악회를 마치고 내려와 붉게 물든 서해안 낙조를 보고 선배 교무님 따라가 곡성 코스모스 길을 걸었습니다. 시골집 담장엔 호박이랑 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곳에 끝 없이 펼쳐진 코스모스 길에서 오랜만에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걸었지요. 들판엔 벌써 가을 걷이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자연 속의 가족 마을 곡성 철도 공원에서 증기기관차를 타고 섬진강 기차마을로 향했습니다. 운행구간을 편도 10키로미터이고 운행속도는 30~40키로미터인데 좌석 입석 모두 합해서 252명이 탑승할 수 있는 세 칸짜리 기차였습니다. 1960년대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운행하던 형식의 증기 기관차라서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고향의 정취를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뿌우 뿌우- 소리를 내며 덜컹 덜컹 달리는 기차 안은 온통 아이들 세상이었습니다. 길가에 누워 있는 황소와 나는 새를 보고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모두가 신기한 모양입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으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지요.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의 하얀 미소를 보며 가을 빛에 젖어 보기로 하고 맑게 흐르는 섬진강 물결에 부질 없는 생각들은 흘러 보냈습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1박 2일의 여행이 일주일이나 된 것처럼 길게 느껴지고 나의 일상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동안 무거웠던 짐을 사은님게 맡기고 내려놓으며 크게 심호흡을 해봅니다. 또 언젠가 가슴 뛰는 일이 시작되겠지요. 뜰에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붉게 물들어 가고 푸른 하늘에 흰구름도 떠가고 국화향기 그윽한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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