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안웅 교수의 정전 한문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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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안웅 교수의 정전 한문공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4.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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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에 대하여


개벽(開闢)은 한마디로 ‘열리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여기에서 개(開)와 벽(闢) 모두 ‘열다’는 뜻을 가진 말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서로 약간 차이가 있다. 개(開)란 말에는 좌우 두 문(門)이 빗장(二) 걸려 있는 것을 안에서 두 손(兒)으로 연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 벽(闢)이란 말에는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는 벽(壁 : 송곳으로 찔러(辛) 사람이(尸) 숨 쉴 수 있는 구멍(口)을 만들고 나머지를 흙(土)으로 막은 것)을 연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면 이 ‘열다(開)’와 이 ‘열다(闢)’는 말은 구체적으로 그 뜻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한마디로 ‘개(開)’는 열면 앞이 한통속인 것 즉 ‘하늘이 열리다’는 말로, 벽(闢)은 사방이 열리다 즉 ‘땅이 열리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개벽(開闢)’이란 말 자체는 ‘천개지벽(天開地闢)’ 다시말해서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늘과 땅, 무엇이 먼저 열릴까?



그렇다면 순서상으로 하늘이 먼저 열리는 것일까? 아니면 땅이 먼저 열리는 것일까? 이는 지구과학의 문제라기보다 종교철학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 사람이 태어나면 숨을 먼저 쉴까? 아니면 밥을 먼저 먹을까? 당연히 숨을 쉬는 것이 먼저다. 숨을 쉰다는 것은 곧 하늘에 있는 공기를 먹는 것이니, 그렇다고 한다면 하늘이 먼저 열린다고 하는 것이 맞다.


옛말에 천복지재(天覆地載)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만물을 덮고 땅은 만물을 싣는 것이라는 뜻이다. 천지가 모두 다같이 큰 것이지만 그 우열을 가린다면 덮개인 하늘이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람의 존재란 또 어떤 것일까? 역시 사람에 대한 사유로 모든 철학이나 종교가 다 나왔기 때문에 하늘이 열리고(天開) 땅이 열리고(地闢) 그 다음에 사람이 나왔다(人生)고 할 수 있다.


천개(天開), 지벽(地闢), 인생(人生), 그래서 우리가 천지인(天地人)을 삼재(三才)라고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 이것이 만물을 운용하는 재료이다. 천지가 있어봤자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중국 고대신화를 보면 자시(子時)에 천개(天開)하고 축시(丑時)에 지벽(地闢)하고 인시(寅時)에 인생(人生)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곧 개벽이다.


그런데 하늘이 하는 일과 땅이 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하늘은 해와 달이 떴다 졌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이끌어 나간다면 땅은 동도 있고 서도 있고 남도 있고 북도 있어서 우리에게 공간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누가 존재하고 있는가? 바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 그냥 평면적 가운데(中)가 아니라 입체적 가운데(央) 즉 상하좌우전후 육합(六合) 한가운데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다시 동양의 역사와 비교하면 하나라(夏)는 시간을 발견해 천문을 발달시켰다면(夏時), 은나라(殷)는 수레를 발명해 문명을 만들었고(殷輅), 주나라(周)는 형식과 질서로 문화를 싹 틔운 것과 같지 않을까(周冠冕) 싶다.


文明(문명)이나 文化(문화)는 반드시 天文(천문)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고대문자에서는 효(爻)자는 문(文)자로 사용되었다. 하늘이나 자연에는 원래 다 무늬가 있다. 바위에 이미 부처님의 형상이 담겨 있는데 조각하는 사람이 이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뿐이다. 이것이 천문(天文)이다. 문명과 문화는 상호작용을 하며 발전해 가지만 대개는 문화가 문명의 발전을 뒤따르게 된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도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신문명을 조화롭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일찍이 육상산 같은 분은 ‘육경주아 아주육경(六經注我 我注六經)’이라 즉 육경을 배워서 나를 알아야 하지만 궁극에 가서는 내가 육경을 주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육조스님은 법화경에 능하다는 상에 사로잡힌 법달이란 제자에게 심미법화전이요, 심오전법화(心迷法華轉 心悟轉法華)란 말로 깨우침을 주었다. 마음이 어두우면 네가 법화경에 끌려 굴림을 당하고 마음을 깨달으면 네가 법화경을 마음대로 굴리고 다닌다는 말이다.


이미 이 세상은 자연적인 문양과 가락으로 꽉 차 있다. 화담선생은 거문고 줄을 다 끊어버리고도 줄 없는 거문고를 탈 줄 알았다. 거문고 줄을 따 끊어버렸지만 북쪽 창가에다 거문고를 걸어놓으니 바람이 불어 공명의 소리를 낸 것이다. 이미 바람의 천문(天文)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가락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에 줄이 없어도 거문고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에 중심을 둔 문화 건설



그런데 천문(天文)의 하늘은 이렇게 한통속인데 이것을 땅에 옮겨 심으면 태어나는 것이 다 다르다. 생강도 봉동에 심으면 명품이 나오지만 운봉에 옮겨 심으면 봉동보다 못하다. 토질에 따라 천문이 나오는 모양새가 각각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잘 참조해서 인문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면 인문 건설의 기본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물질문명(科學)의 발달에 따라 정신문화(道德)를 창달시키는 일이다. 물질을 사용해야 할 인간에 중심을 둔 인간중심의 문화가 추슬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늘에서 우러난 것’(天理)임을 깨달아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하늘의 이치를 몸소 보는 견성(見性), 하늘에서 부여받은 사명을 고스란히 실천할 수 있도록 키우는 양성(養成), 그리고 그대로를 잘 다스려 가는 솔성(率性)공부가 필요하다.


이처럼 열리는 하늘을 머리에 두고, 열려지는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이 그 열려지는 하늘과 땅을 제대로 열어갈 수 있는 인간지식의 함양, 이것이야말로 천지개벽에 따른 인간개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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