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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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문-4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4.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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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험한 깨달음

소위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 가운데는 지켜야 할 계율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한 소식을 얻었으니 걸리고 막힐 것이 없다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초월적 경지를 좀 맛보고 나서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의 법칙을 가볍게 알거나 비웃기도 합니다. 대종사님은 경고하십니다. ‘불문(佛門)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수행을 해서 마음을 좀 보고 나서는 스승도 필요없고, 수행도 필요없다고 합니다. 한번 밝히면 되었지 닦을 것도 없는 자리를 어찌 수고롭게 더 닦을 것이냐고 큰 소리 칩니다. 대종사님은 말씀하십니다. ‘비록 견성은 하였다 할지라도 천만번뇌와 모든 착심이 동시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고.


고(苦)도 고가 아니요, 죄(罪)도 죄가 아닌 경지를 알았고, 내가 내 죄를 용서하고, 사(赦)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으니 죄업은 더 이상 상관없고 참회도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대종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불을 하였다 할지라도 정업은 능히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사견에 빠지지 말며 불조(佛祖)의 말씀을 오해하여 죄업을 경하게 알지 말지니라.’


살아있는 마음은 능히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도 천층만층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영원히 참회개과’하라고 하십니다. 이치는 알았으되 참회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고, 깨달음도 점점 더 깊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영원히 하는 것입니다. 참회가 필요 없다는 사람, 수행도 스승도 필요 없다는 사람, 위험한 사람이고 위험한 깨달음입니다. 사람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이끄는 깨달음입니다. 이건 깨달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참회가 필요한 그릇된 견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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