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한문공부-황안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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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한문공부-황안웅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6.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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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정일

動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움직이다’는 여러 가지의 꼴새 중에 특히 무거운 것을 힘써서 움직인다는 말이다. 무겁다는 것은 가볍다는 것과 양에 따라 다르다. 여기서 바로 量이 나온다. 또한 무거운 것은 힘을 쓰게 한다. 힘을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으므로 힘을 쓸 때와 안 쓸 때의 차이를 알아봐야 한다. 대개 힘을 쓰는 것은 손이다. 힘을 쓰면 이두박근이 나오는 것이다. 힘을 써서 이두박근이 나온 모양이 바로 力, 곧 힘이다. 그러므로 動은 무거운 것을 힘써서 움직인다는 것이며, 결국 일한다는 의미다.


물은 반드시 흐르게 되어있다. 공은 움직이지만 흐른다고 하지 않고 구른다고 한다. 물을 흐른다고 하는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다. 물이라는 것은 크게 말하면 맑은 물과 탁한 물이 있다. 맑은 물은 빛깔이 파란데 탁한 물은 빛깔이 어떠한가? 그런데 탁한 물은 본래 여기에 진리가 있다. 사람 마음도 본래 탁한 것이 아니라 물들어서 그렇다. 그러면 탁한 것은 왜 탁한가? 蜀 자를 잘 보면 누에처럼 생겼다. 누에의 운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스스로 싸고 벌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촛불이 타는 것은 燭, 마치 누에가 꾸물거리는 것과 같다. 홀로 獨, 너는 왜 고독한가? 생각해보면 나누지 않으면 고독하다. 저만 먹으면 고독하다. 저만 먹는 것을 두 개만 고르면 누에는 늘 제 밥만 먹는데 밤낮으로 먹어도 배터져 죽는 놈이 없다.


또한 개는 형제간에 잘 노는 것 같아도 명태 대가리 하나에 서로 으르렁 거린다. 개와 누에, 나눠먹지 않는 것들이다. 이 개와 누에를 합친 것이 왕따 되는 진리를 갖춘 獨이다. 淸은 맑은 물이다. 누에 번데기, 누에 고치 씻은 물이 탁한 물이다. 청수는 대개 산에서 나온다. 반면 탁수, 즉 농사할 때의 물은 탁해야 한다. 물이 탁하다는 것은 플랑크톤이 많다는 것이다. 農水는 즉 짙은 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청수와 탁수는 만나면 서로 잘났다고 소리가 난다. 錚錚! 그렇게 서로 흐르고 섞이고 나면 스스로 自淨이 된다. 맑은 물과 탁한 물이 다툰 이후로는 깨끗해지는 것이다(淨). 교무님은 본디 맑은 분이다. 그래서 탁한데 가서 교화하면 아무래도 자정이 되는 것이다. 수도를 하는 사람 옆에 가면 저절로 자정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이 自淨이 되면, 다시 맑은 물이 돌아간다. 소리나던 물이 고요해진다. 다투던 것이 고요해진다.


물은 청탁이 합칠 때에는 다투지만 일단 합쳐 흐르다 보면 깨끗해지고, 파랗게 제 모양을 찾아 고요하다. 고요할 靜 이다. 動靜을 어원으로 보면, 일할 때나 고요할 때, 일할 때나 별 일이 없을 때를 말한다. 하나! 하면 다 아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어려운 것이 없다. 가장 작은 수도 하나고, 가장 큰 수도 하나다. 또, 하나는 一如, 한결같다는 뜻이다. 이것의 숨은 뜻은 일이 없을 때는 일의 준비를 해야 하고, 일을 할 때는 장차 일을 계획하고, 일이 있을 때는 그 계획대로 나가라는 것이다. 계획과 계획이 한결 같아야 한다.


동정일여 하면, 참을 놓고는 될 수 없다. 천만번 참는 마음을 놓지 않듯이, 한결같이 하면 동정일여가 된다는 뜻이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목수 맘대로 집을 짓는가? 그렇지 않다. 집을 짓고자 하는 목수는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는가? 철이 없을 때에는 한푼도 없는 사람이 꿈에서 고래등 같은 집을 짓는다. 딱 깨어보면 꿈이다. 그 꿈은 현실적으로 땅 한평도 없는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 똑같은 일이다.


목수는 먼저 그 땅을 확보해야 한다(基), 그 터 안에 붓으로 그려내는 것, 즉 설계를 해야 한다(建). 그 다음으로는 다 다듬어야 한다. 풀도, 소나무도, 주위를 다듬어야 한다(礎). 그 다음 63층이면 63층을 다 마름질 해야한다. 나무도, 지붕도 설계대로 마름질을 해야한다(築).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 건축 기초를 그려 집을 짓는 것이다. 아무리 거창한 집도 이 순서대로 짓는다. 소재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집이 다 허물어도 설계도만 보면 그 집을 알 수 있다.


동과 정은 항상 서로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괜히 휴게소를 둔 것이 아니다. 자동차에 맞춰 신작로를 낸 것이다. 휴게소 없이 계속 서울-부산을 왕복하면 차가 부서지게 된다. 쭉 가다가 쉬고, 또 쉬고 해야한다. 동정이 한결같아야 차가 오래 간다. 괜히 토요일 일요일 쉬는 것이 아니다. 동정일여 때문이다. 동정일여, 맹자님 말씀에 우산의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낮이 필요하고, 우산의 나무가 쉬기 위해서는 밤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동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가? 닥친 일을 헤쳐 가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반면에 정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완전하고 편안한 안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진정한 동정일여를 하기 위해서는 정혜쌍수가 필요하다. 불법연구 초기, 이를 정정요론에서 밝혀 주셨다. 정할 때의 공부로 동할 때 써먹어라 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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