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셨다’, ‘열반하셨다’ 대신 ‘죽었다’는 표현을 합니다. 여기서의 ‘부처님’은 진리를 온전히 깨달은 ‘사람’을 이르고,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온전히 죽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사람 몸으로 태어났던 부처님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몸 그대로 부활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부처님은 석가모니나 소태산 박중빈이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분들이 그토록 간절히 구했던 ‘진리’이고 ‘가르침’입니다. 색신(色身)부처님이 아니라, 법신(法身)부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신불(法身佛)입니다. 이 진리, 진리 부처님, 법신불은 하느님으로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도(道), 자연(自然), 비로자나불로도 불립니다.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서 ‘이름 할 수 없다’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표현의 역설입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부처님들, 고맙지 않을 수 없고, 그 분들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처님들은 말합니다. 나를 밟고 가라고, 내 사랑에 보답하려면 나를 넘어서라고, 색신을 넘어 법신을 보라고. 대종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라고.
만고(萬古)에 무너지지 않는 진리를 드러내놓고 부처님들의 몸은 무너져갔습니다. 색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무너뜨려야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법신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역설입니다.
이 역설을 알지 못하면 대종사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툭하면 헛된 것을 믿다가 허무한 결말을 보곤 합니다. 속기도 잘하고 사기도 잘 당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속지 않습니다. 지금 무엇에 속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