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추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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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추경 2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1.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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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성균 교무와 함께하는 대산종사 법문

옥추경을 옥추보경(玉樞寶經)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점복· 제사에 쓰이던 도교의 위경(僞經)으로 주로 소경· 박수들이 많이 읽었다. 소태산 대종사도 대각 후 옥추경을 참고로 열람하였다고 한다.


불교의 정수를 반야심경이라고 한다면, 도교의 정수는 이 옥추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종사님 당시 옥추경을 많이 말씀하셨다.


도자(道者)는 이성이입(以誠而入)하고, 즉 도라는 것은 정성으로서 들어가고, 정성이 없으면 도에 들어 갈 수가 없다. 공부 길에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있는데 공자님은 생이지지(生而知之)하고, 안자님은 학이지지(學而知之)하며, 증자님은 곤이득지(困而得之)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들어가서는 같다.


그런데 여기서 생이지지나 학이지지나 곤이득지가 다 정성 없이 들어간 법이 없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가는 제일의 열쇠가 성(誠)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큰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정성이 없다는 것은 ‘나는 못합니다’ 하고 항복 문서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증자 같은 양반은 삼순구식(三旬九食)하고 십년불의(十年不衣)하였다. 즉 가난해서 10년 동안 새 옷을 못해 입었다. 우리 대종사님 계실 때 출장복 하나 놓고 출장할 때만 입었다.


그런데 증자님 같은 양반도 은녹대부 벼슬을 주니까 나는 벼슬보다는 도가 더 좋으므로 이 생활을 해야 겠다고 하여 밭을 매면서까지 공자님의 도덕을 얻기 위해 일단의 정성을 다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님은 생이지지하고, 안자님은 학이지지하고, 증자님은 곤이득지 했으나 길은 같다.


공자님은 十有五而志于學하고(열 다섯에 비로소 도에 발심이 나셨고), 三十而立하고(서른에 큰 뜻을 굳게 세웠고), 四十而不惑하고(마흔에 모든 유혹이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게 했고), 五十而知天命하고(오십이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단 말이다. 즉 성리를 짐작했단 말이다), 六十而耳順하고(이순이라는 것은 출가위다. 대종사님께서는 나는 스승을 정하지 않았다 하셨는데 천하를 스승으로 삼으셨다. 누구든지 외부 사람이 오면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도덕가는 도덕가대로 물어 보시어 다 흡수하셨다. 이순(耳順)이다. 다 들어오는데 막히고 걸림이 없다), 七十而 從心所欲不踰矩라(마음 가는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말이다).


대성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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