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과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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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희생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3.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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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도연 교무의 7분 명상 45

가까이 다가온 봄을 즐기노라면 나도 모르게 봄과 하나가 되어 자연 속으로 녹아들곤 합니다. 자연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지만 누구의 발길이든 멈추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자연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대신 무엇인가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혼자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어둠이 없다면 빛나는 별을 볼 수 없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줄 배경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계산이 빠른 우리는 섣불리 타인의 배경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을 나의 배경으로 만들 궁리부터 합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우리가 과연 자연처럼 서로의 배경이 될 수 있을까요?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배경이 되는 것에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군가의 배경으로만 남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경이 되고 난 후에도 내 꿈을 포기하고 내 인생을 던져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는 피해의식을 갖곤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게 이럴 수가 있어, 따위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들을 외치며 상대의 책임을 대가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배경으로서 행한 모든 행동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위해 헌신만 하고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좋든 싫든, 배경으로서의 삶 또한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대를 위한 행동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자기만족이 있었기 때문일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자연은 무언가의 배경이 되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습니다. 상대의 배경이 된다고 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밤하늘이 아무리 별을 사랑한다 해도 자신을 온통 별로만 채우지는 않습니다. 하늘은 시간이 지나면 별 뿐 아니라 태양도 구름도 품어내면서 본연의 자신을 지켜나갑니다.


자연은 아무리 사랑하는 존재를 만난다고 해도 고유한 자신의 특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연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를 꿋꿋하게 세상에 내보이기 때문에 자연이 경이로운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의 배경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무한한 확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광대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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