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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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하는 공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4.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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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도연 교무의 7분 명상 50

며칠 전 영모묘원 납골당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는 본원에 대한 그리움, 고향 같은 편안함, 그 가운데 잔잔한 외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사십 세가 되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나이가 지나고 보니 더욱 뼈저리게 알 것 같습니다. 죽음의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잘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잠깐인데 그 잠깐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영생이 달라지고, 70~80평생이 영생을 판가름하게 됩니다.


죽음은 살아있을 때의 공부를 결산하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죽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죽는가 하는 것이 그동안 해 온 공부의 총 결산이니까요.


결정적일 때 한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이 다음 생을 결정짓는 변수가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갈고 닦았다 하더라도 임종 직전 그 한 마음이 한 사람의 일생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죽는 때인 것 같습니다. 죽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죽는가? ‘나를 괴롭힌 사람, 나를 미워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겠다’ 하는 마음으로 죽는 것과 ‘다 내가 잘못했다, 모두를 용서하고, 진실로 참회한다’ 는 마음으로 죽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그동안의 많은 업이 상쇄됩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먹은 마음이 그 사람의 평생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결정적일 때 먹었던 마음이 그 사람의 내생을 결정짓는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있을 때 육신을 갖고 있기에 무엇인가 덕지덕지 붙을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는 아무 것도 없이 다 놓고, 비워져서 가벼운 상태로 가야합니다.


비우는 방법에는 버리는 방법과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움을 돕는 방법으로 남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주고 받을 때 그 흐름이 원만해지고,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자신에게 남아도는 것 뿐 아니라 유용한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눌 때 더욱 큰 은혜가 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자연에, 인간에, 세상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은혜에 보은했을 때 하늘은 반드시 언젠가는 누구를 통해서든 기하급수적으로 돌려주십니다. 하늘의 장부에도 대차대조표가 있어서 한 치의 오차가 없을 테니까요.




원광대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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