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없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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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없는 공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5.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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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문우답

수도 없이 많이 들은 공부 내용이다. 상없는 공부는 간단하다. 했다면 티를 안내면 되는 것이다. 그 공부의 지름길은 겸손이다. 몸에 겸손이 배어 있으면, 상 안내는 공부를 쉽게 한다. 그러다보면 그 결과는 배려로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밭(心地, 심지)는 그림자가 없다. 상이 없는 것이다. 초에 불을 켜보면 안다. 초에 불을 켰을 때 초의 심지 자체는 그림자가 없다. 그러나 그 심지에서 타는 불꽃에 비추는 물체들은 그림자가 생긴다. 초는 빛을 주면서 자기를 태운다. 그래서 심지 그 자체에는 그림자가 없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내 심지에 불을 켜서 빛을 비추면 상이 없다. 그러나 그 심지를 태우지 못하고 자꾸 나타난 것에 비추면 그림자가 진다. 스스로 그것을 모르면서 계속 반복되어지는 일들 속에 오만이 나를 겹겹이 감싸다 보니 업장이 두터워진다.


그래서 ‘대산종사께서는 대적공실로 자신성업봉찬.’하라 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리는 꾸어서라도 보아야 한다.’ 강조해주신 것이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아무리 공부를 하였다 할지라도 어린아이요, 큰 아이지 수도인으로서 어른은 못된다.’ 하셨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데 어찌 상이 없겠는가. 그러니 성리 공부를 해야 하고 성리를 알아야 한다. 안으로 내 불빛을 밝히면 즉, 자성 광명을 밝히면 그림자가 없어지는 것이다. 대강 공부를 마치면 그래서 의두요목으로 성리공부를 해야 한다. 자꾸 궁굴리면서 관조로서 지혜를 밝혀내야 한다.


이런 원리로 우리는 교당에서는 불단에 촛불을 켜는 것이다. 불단을 장엄하려고 켜는 것이 아니다. 예전 교도들은 교당에 먼저 와서 촛불을 켜려고 은연중에 경쟁이 심했다. 원리를 잘 알아서 그리 하는 것인가는 모르겠으나, 신앙행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교당에 오면 먼저 촛불을 밝혀 자성광명을 밝히리라 다짐하는 습관을 들이면 평상시 생활 속에 성리의 틀이 잡힐 것이다. 그러니 이 촛불을 밝히는 것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행위이다. 자 촛불을 밝히자. 내 마음에 촛불을 밝히면, 그때 비로소 스르르 상이 없어진다. 밖의 불만 밝히면 계속 그림자가 남는다. 이렇게 내 마음에 촛불을 밝히면, 밖의 더 좋은 곳을 찾아 촛불을 밝히거나, 더 좋은 말씀을 찾아다니는 일이 없어진다. 심지는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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