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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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와 우연
  • 관리자
  • 승인 2016.03.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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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67) /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인연과보에는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과 자기가 지어서 받는 고락(『정전』‘천지배은의결과’,‘ 사리연구의목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지어서 받게 되는 인과의 원리를 모르고 받으면 우연한 고락이라 하고, 알고 받으면 지어서 받는 고락이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발적으로 주어지는 고는 불운이라 하고 우발적
으로 찾아오는 낙은 행운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정 괘도를 도는 행성에 어디선가 돌진하는 힘에 의해 행성의 괘도가 이탈되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는 관점에 따라 우연과 우발성이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 조건에 의해 변수가
발생하여 예측에서 벗어난 것은 법칙 속의 우연(accident)이라 한다면, 법칙에서
예외적인 현상으로 형이상학적 이유가없는 것은 우발성(contingent)이라 합니다.




# 우연(偶然)과우발성(偶發性)
그런데 우연에는 과거의 업과 무관한 ‘우발성’이 걸려 있습니다. 우연에는 과거와 무관한 현재시제의 임의성 즉 행운이나 불운과 같은 우발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우발성은 정말 과거의 인연관계와 무관한 무인과적인 현재성의 발현인지? 이런 의문이 들게 됩니다.



총괄하여 살펴보면, 우연은 우발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연과보의 선상에서 받아들이게 된다할 것입니다. 즉 우연에는 1차적으로 과거와 무관한 행운같은 우발성이 주어지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2차적으로 자신의 과거습관인 업식과 사회적 습속(habitus)이 결부되어 해석된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연은 과거가 단절된 현재의 사건으로써 우발적인 듯하나 개인적 성향과 습관의 연속성과 사회적 습속(習俗)의 인연이 직간접적으로 내재해 있다할 것입니다. 우연은 운(運)의 유무에 의한 임의적인 우발적 현상 같으나, 과거와 단절된 현재시제의 독자적 임의성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주어지는 운에는 우발적 현상은 있으되 2차적인 각자의 해석의 틀에 따라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의 틀은 각자가 지은 과거의 총체적 인연의 힘이니 결국 우연도 자기의 업식(業識)에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연은 두 가지 계열이 교차합니다. 교통사고의 인연은 내가 목적지로 가는 계열과 타자가 운전하여 오는 계열이 교차하여 마주치는 인연으로, 이것은 과거의 업에 의한 필연으로 볼 수도 있고 운(運)이 없는 것과 같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가 형성한 해석의 틀을 초월한 불운한 운이 독자적으로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부지불각간에 벼락을 맞는 예를 들어 이를 부지불각간에 중인에게 벼락같은 해를 준 죄업으로 인한 수가 많다 하십니다.(인과품 14장) 그럴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 무조건 필연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경운기를 몰고 가다 꽂아 놓은 우산에 우연히 번개가 칠 수도 있는 것 입니다. 번개는 우발적인 것이지만 우산을 꽂아둔 부주의한 습관이 바로 우연한 업보가 된 것입니다.



# 우연을받아들이는자세
이에 따라 자기가 지어서 받는 고락이든 우연한 고락(『정전』고락에 대한 법문)이든 이것을 구별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또한 우연이든 필연이든 다 자기의 업식과 무관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내가 지어서 받는다고 보는 것이 공부에 타당한 방식일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연한 고락이든 자기가 지어서 받는 고락이든 수용하는 마음자세입니다. 선을 행하려는 지혜로운 자는 결국 그 상황이 우연이든 지어서 받는 필연이든 진급하는 상생의 흐름으로 가꾸어 선연 만날 조건을 높이고, 악에 끌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상황을 상극의 경향으로 강급시켜 악연 만날 조건을 조성하게 됩니다.



인(因)-과(果)의 관계는 필연의 대칭관계만이 아니라 우연의 비대칭관계이기도 합니다. 의도(因)가 좋으면 결과가 좋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론 연(緣)이라는 만
남은 다 자기가 지어놓은 상황이라 볼 수도 있으나 현재시제의 우발적인 만남이기도 한 것입니다.


『정전』‘천지배은의 결과’에 “우연히 돌아오는 고와 자기가 지어서 받는 고는 곧 천지배은에서 받는 죄벌”이라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연한 인연이든 지어서 받게 되는 인연이든 천지의 도를 체받지 못하고 천지의 도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그 삶의 경향이 죄해로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연히 돌아오는고락이나 우리가 지어서 받는 고락은 각자의 육근을 운용하여 일을 짓는 결과(『정전』사리연구의 목적)로 육근작용에 공부심이 있으면 우연이든 지어서 받는
필연이든 낙(樂)이 되고, 공부심이 없다면 고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서(盡人事) 그 결과가 우연한 고락이든지 자기가 지어서 받는 고락이 되었든지 그에 연연하지 않고 이를 진리의 연(緣)으로 받아들이는(待天命) 자세가 보
은이요 수행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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