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으로 혁정革鼎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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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으로 혁정革鼎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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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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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법현 교도 / 북일교당


작년에 원불교 개혁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논의 결과에 대한 정당함과 부당함에 대해 말을 보태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다. 논의의 출발을 대종경과 정전으로부터 시작하였다면 훨씬 지혜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서품 18’의 법어들이 소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서품 18’에서 소태산의 어떤 우려(憂慮)를 읽었다. 그리고 백년의 성업을 맞이한 지금에 보면 그 우려가 우려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이 직접‘말’한 법어들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소태산이 법어로 남기지 않은 어떤 규칙이나 제도가 원불교 안에 존재하고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대종경 서품 18장」에는 소태산이 초심이 결집되어 있다. 그것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내면에 어떤 질문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재가와 출가에 대하여 주객의 차별이 없이 공부와 사업의 등위만 따지고 있는가? 재가를 객 취급하여 출가 위주로만 사업을 하려고 들지는 않았는가? 불제자의 계통에 있어서도 재가·출가의 차별이 있는가? 없는가? 수도하는 처소도 신자를 따라 어느 곳이든지 설치했는가?


아마도 여러 여건상 신자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수도하는 처소를 설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관리의 편의상 교당의 문을 꼭꼭 닫아두어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기도를 못하고, 울고 싶은 사람이 울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경전도 그 정수를 가려서 일반대중이 다 배울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편찬하고 있는가? 대종경의 다양한 판본을 허용할 것인가?


고어(古語)투의 문장을 고치고, 청소년들도 쉽게 익힐 수 있는 단어와 문장들로 새롭게 개정된「청소년 대종경」을 발간할 계획은 없는가? 결혼을 각자의 원에 맡기고 있는가? 교무가 되고자 하는 여성에게 정녀선서를 강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소태산 부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어찌하여 각자의 원에 맡기지 못하는가? 이교리 이 제도를 운전하는 기관에 있어서도 시대와 인심을 따라 결함 됨이 없도록 하고 있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대종경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원불교 100년성업을 맞이하여 대종경 읽기에 힘을 써야만 한다. 신심과 성심으로 한 글자씩 읽어가면서‘대종경에 없는 것은 취하지 말고, 있는 것은 취하여’혁정(革鼎)을 이루어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혁이란 옛 것을 버리는 것이고 정이란 새것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 것을 모두 버리란 말인가? 아니다. 옛 것의 나쁜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옛 것의 나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의 완성을 위해 소태산은 정(鼎)을 선택했다.


서품 18’은 원불교 이전에 존재했던 불가(佛家)의 삶과 불제자들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고 새롭고 온전한 대승불교가 생활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원불교의 선언이기도 하다. 원효가 해골 물을 마시고 홀연히 돌아와 새 삶을 살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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