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무량한 낙원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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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무량한 낙원 인도
  • 관리자
  • 승인 2016.0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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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길튼 교무 / 나주교당


「개교의 동기」의 목적은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낙원을 목적한다면 부처님은 열반을 목적합니다. 열반은 욕망의 불을 꺼버린 적정(寂靜)의 상태로 현상계의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멸(滅)한 초월처라 할 것입니다. 열반의 시각에서는 낙도 일종의 고(苦)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고(苦)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모든 한계상황을 총칭하는 근원적 명제로, 현상계는 자기 욕망대로 다 안 되는 제한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고가 낙에 대한 상대적인 고가 아니듯 낙원도 고의 상대적인 낙이 아닙니다. 고가 일체의 한계상황이듯 낙원도 이런 한계상황을 넘어서는 상태로 정당한 고락(정전』고락에 대한 법문)을 포괄하는 낙입니다.


『정전』「개교의 동기」에서 파란고해는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는 인간의생활로,‘ 생사윤회’의고통에서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의 모습과 그 맥락이 닿고 있으며, 또한 변하는 무상(無常)한 것에 대한‘집착’과‘갈애’그리고‘무명’은‘물질의 세력’에 이리저리 휩쓸려 ‘쇠약해진 정신’의 다른 모습이라 의미 연결할 수 있습니다.(장진수 교무 논문)


부처님이 인간 일반의 고락을 말씀하셨다면 대종사님은 새로운 물질문명시대의 고락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개교의 동기」의‘광대무량한 낙원’은 물질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정신의 세력, 즉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은 상태입니다.


# 광대무량한 낙원


낙원은 내생의 낙원과 마음의 낙원 그리고 사회의 낙원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내생의 낙원은 현생을 열심히 살아 그 과보로 내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으로, 서방정토에 왕생극락하는 것도, 미륵세상에 태어나려는 것도 다 이런 내생의 낙원의 기원인 것입니다. 사회의 낙원은 병든 사회를 치료하여 현실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라면, 마음의 낙원은 마음의 자유를 얻어 지금 이 순간에 바로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개교의 동기」의‘광대무량한 낙원’은 마음의 낙원을 중심으로 사회적 낙원도 가꾸어 가고 내생의 낙원도 개척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고락을 초월한 절대계에 바탕하여 상대적인 현실계에서 구체적으로 낙을 가꾸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고락을 초월한 극락(성리품 3장, 불지품 16장)과 낙원은 어감의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방과 이웃이 어찌 되었든 나만 묶이지 않고 해탈하면 그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낙원은 광대한 낙원과 무량한 낙원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광대한 낙원은 공간적으로 더 확장된‘어디나 낙원’을 말한다면, 무량한 낙원은시간적으로 더 지속되는‘언제나 낙원’이라 할 것입니다.


낙이 개인적인 추구라면 낙원은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다 볼 수 있으나, 개인과 공동체를 구분하기 보다는 각자 낙 있는 생활을 하면서 아울러 서로서로 낙원을 추구해 가자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당하게 좋으면 남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당하게 좋아지도록 서로 돕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실현이 낙원건설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引導)하는 것이 대종사님의 개교동기입니다. 인도는 바로 제생의세의 교화로, 내가 해보니 좋듯 남에게 권하는 것이며(自利利他), 자신이 제도 받아 좋듯 이 좋은 점을 타인에게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自度他度). 자신의 정신개벽으로 타인의 정신개벽을 돕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신개벽으로 인도하고 타인을 정신개벽으로 인도되도록 돕는 그 자리가 광대무량한 낙원입니다.


#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


대종사님은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방식으로‘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근거한 종교의 신앙과 사실에 기반한 도덕의 훈련이 정신개벽의 구체적 방법인 것입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은 진리에 부합되는 신앙으로, 진리란 참된 이치(理)로써 천조(天造)의 대소유무의 이치(『정전』사리연구장)를 말한다면, 사실적 도덕의 훈련은 사실에 부합된 도덕을 훈련하자는 것으로, 사실의 사(事)는 인간의 시비이해(『정전』사리연구장)입니다. 시비이해 속에서 도(道)에 바탕하여 덕을 나누는 훈련입니다.


대종사님은 종교적(=신화적) 진리를 진리적 종교(=인과보응의 신앙)로 돌려 신앙세계를 정화하시었고, 사념적 도덕을 경계 속의 사실적인 도덕으로 돌려 수행세계를 정화하셨습니다. 미래시대는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이 두 길을 벗어나서는 낙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축이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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