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星州, 멋진날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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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星州, 멋진날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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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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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관응 교무(경남교구 신현교당) / 한울안칼럼


아침 시간에 성주성지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거닐다 보니 상쾌함이 온 몸으로 전해진다. 제법 짜임새 있게 조성되어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


소나무의 키도 그렇게 높지 않고 간격도 적당하여 걸림도 없었다. 중간 중간 바위가 놓여 한격 품격을 높였다. 여기서 여유자적하게 자연을 벗 삼으니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권세욕과 명예욕, 권리욕에 집착하다 보면 유유자적함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오죽했으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겠는가. 얼마 가지 못 할 권세와 명예와 권리의 멍에에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고 있으니 아쉬울 뿐이다.


욕심이 앞을 가리면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아픔을 느낄 때는 주변인들이 등을 돌리는 시기이다.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한다. 경주가 거의 끝났기 때문이다.



공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욕심으로 하는 공부는 얼마 가지 못한다. 처음에는 반짝 거릴지 몰라도 쉽게 빛을 잃는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몰려드는 사람들도 이내 흩어진다. 순식간이다. 사람들이 귀신임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체험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아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붙잡고 끙끙될 필요가 없다. 주변인들이 봇짐을 싸는 것은 시간문제다. 붙잡아도 소용이 없다. 말이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된다. 허망함이란 이런 거다. 그러니 오래 꾸준히 공을 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다. 참고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다. 오직 진행할 뿐이다. 한 세월 지나고 또 한 세월이 지나면 멋진 날이 오게 되어있다. 나에게 깨우침을 준 소나무를 다시 한 번 보고 있자니 대산종사께서 원평에서 요양을 할 때 지은‘채약송(採藥頌)’구절이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 모악산에서 하는 나의 일을 묻거늘, 나의 소식을 묻거나 찾지 마라. 낮에는 산과 물에서 노닐고 밤에는 삼매 대적광의 경지에 머무느니라. 소나무는 굽이굽이 홀로 푸르름을 지키고 바위들은 우뚝우뚝서서 물소리를 듣는구나’



대산종사께서는 수행의 경지를 짧은 글귀에 다 실었다. 너무 멋진 세월이었다. 고요함과 빛남이 반복되어야 푸름을 지키고 물소리를 듣게 되는 것 같다.


이 흐름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이 먼저 열려 있어야 한다. 몸이 정화되고 또 심층정화가 되어야 온전함을 맛볼 수 있다. 이 맛은 단 맛도 아니고 쓴맛도 아니고 매운맛도 아니고 짠 맛도 아니다. 이것을 벗어난 무심적적(無心寂寂)한 무(無) 맛이다.


이 맛에 길들여지다 보면 에너지의 흐름을 체험할 수 있고 그 흐름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 다음 심공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 다음 우주 에너지와 연결이 되어 자연스러움에 들 수 있다.


성주성지를 벗어나 초전면 동포리에 소재한 초전교당 법당에서도 그 흐름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동안 베일에 숨겨져 있다가 정산종사의 성안을 꿈에서 두 번 뵙고 교당 설립이 되었으니 그 에너지가 오죽했겠나 싶다.



법당에 20분 정도 앉아 있으니 강하게 부드럽게 전해져 있는 에너지의 흐름이 있었다. 이것은 깨침으로 가는 여정임을 알았다. 그 흐름은 살금 살금이 아니라 순식간에 다가 오기도 했다. 알면 아는대로 지나갈 뿐이었다. 감격스러움을 맞이하기도 했다. 따라서 성주에서 느낀 이 멋진 날의 아침을 공양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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