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공부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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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공부⑵
  • 관리자
  • 승인 2016.03.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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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생활’이란 무엇인가? 감사할 일이 있을 때는 누구나 감사를 하고, 감사를 함은 당연한 것인데 굳이 ‘감사 생활을 하자’함은 이를 강조함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나는 얼마 전까지 위 말은‘좋지 않은 환경을 극복하여 개천에서 용이난다’,‘ 젊어서고생은사서도한다’는 등의 말과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여‘전화 위복을 이룬다’는 정도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원망생활을감사생활로돌리자’는 말은 이보다 훨씬 깊은 내용의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재앙이 닥쳤다면 이것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공부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나에 재앙이 닥쳤다면 이는 이미 인과의 이치에 따라 당연한 것이거늘, 재앙은 과거 나의 빚을 갚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재앙으로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자리에서 인과의 원리를 알게 해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올바른 삶에 다시 참회와 정진을 함으로써 재앙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잘못을 깨닫게 해 줌에 감사할 일입니다. 참회, 정진의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암 진단을 받았다면 “왜 암이 하필 나에게 왔나?”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어제도 있었던 암을 오늘 일찍 발견하게 해 주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그리고 식생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치료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고통과 재앙이 오더라도 그것을 고통과 재앙으로 여기고 후회하고 좌절할 것인지, 참회하고 반성하여 새로운 길을 갈 것인지는 오직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보시를 하되 이름을 알리지 않고 하는 것인가? 남모르게 하는 것인가?‘ 무주상 보시’를 하면 그냥‘보시’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복이 온다는데 정말 그러한가? 석가 탄신일 연등에 이름을 적지 않으면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무주상 보시란‘보시를 하고 복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바램이 없는 보시’,‘ 보시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보시’, 그것이 무주상 보시입니다. ‘챙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처럼’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물을 주고, 옷이 필요한 사람에게 옷을 줄 뿐입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일 뿐, 그것이‘보시(한다)’라는 생각조차 없는 것이 무주상 보시입니다. 이것이 함이 없는 행이요. 무위의 행일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무루의 공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얻는 무루의 공덕이란 ‘무안한 마음의 평안’일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행동하라’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비우나? 오염된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것인가? 좌선을 많이 함으로써 집착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인가? 마음에 욕심을 버리라는 것인가?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라는 것인가? 지나친 욕심만 버리라는 것인가?



이것은‘바라는 것이 없는 마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그때 그때의 필요에 의하여 최선을 다
해 정진할’뿐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여 후회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방법을 모색하여 정진할
뿐입니다. 일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요구되는 노력의 정도와 성사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정진을 할 수 있습니다.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는 생활에서 어떻게 하라는 뜻인가?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진공 묘유의 생활 자세’란 무엇인가?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진공으로 체를 잡는다란 무시선 법 강령에서 동할 때의‘정의’를 양성함에 있어‘그 일만 생각하라’,‘ 그 일에 일심을 모으라’는 것으로 생각
됩니다. 불교의‘선정에 든다’, 교육학에서‘몰입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입니다. 그 일에 일심된
상태에서 심신작용을 하면 묘하게 나타나는 심신작용의 결과가 바로 묘유로 생각됩니다. 일상생활 중 어떤 일이나 경계를 당할 때,‘ 과거의 생각이나 그 어떠한 상을 가짐이 없이 지금 여기서 이 일만
생각하고 집중하면 묘하게 영지가 솟아오르게’되는 것입니다. 그 영지는 일원상의 진리에 합한 것으로 심신작용에 따라 우주 만유를 나투게 되는 것입니다. (끝)


감각감상┃이덕우 교도(반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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