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정신개벽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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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정신개벽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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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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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담현 교도(마포교당), 원불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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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이는 대종사께서 100년 전인 20세기 초반(1916년)에 내세운 개교의 동기다. 물질문명발달에 따른 정신문명의 피폐화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러한 주장이 당시에 새롭고 파격적인 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이 19세기 후반(1875년 경) 쇄국정책에서 문호개방으로 방향을 바꿀 당시 이를 반대하였던 조선의 유학자들도 이미 서구의 물질문명에 조선의 건전한 정신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였다.

그리고 물질문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는 오늘날 시민불복종운동의 기원인 소로우가 19세기 중반(1854년경) 이미 자신의 책 '월든'을 발표하여 물질문명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당시 미국사회에 대하여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의 책 월든은 우리나라에서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에 큰 영향을 준다.

이렇듯 당시 선각자들을 통해 이미 예견되었던 내용인 개교의 동기가 큰 의미를 지니는 무엇일까. 대종사께서 이를 사상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에서 접근하였으며 이를 개교의 동기로 삼았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상은 머릿속에 머물고 토론의 주제이지만 신앙은 삶과 생활의 중심이다. 중세시대의 유럽 기독교 및 현재 중동 이슬람이 자신의 교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신앙이 가지는 힘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개교의 동기에 따라 우리는 신앙의 차원에서 정신을 개벽하기 위해 100년 동안 노력, 정진해왔고 원불교는 어느새 대한민국 4대 종교에 들어갈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5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선진님들과 우리가 이끈 성과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나 자신도 그 자리에 동참하였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함께 나는 내면적인 부족함이 있음을 숨길 수 없다. 만일 대종사께서 다시 오셔서 나에게 정신개벽을 얼마나 이루었지는 물어보신다면 대답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 딸의 아빠로 딸들이 좀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해서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차를 타기위해 보다 많은 돈을 버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우리 가족이 물질문명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정신이 중요하고 이의 가치를 소중히 키워야 한다는 것을 겉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내면화되어 있지는 못하다. 아직도 정신을 개벽할 용기가 부족한 나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개교의 동기가 신앙으로서 체화되어 있지 못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교도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19세기나 20세기 초에 비하여 오늘날 물질의 힘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리고 각 대학에서 철학이나 역사 등의 인문학과가 폐지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의 가치는 그 자리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개인이 홀로 이러한 물질의 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교단이 이전 100년보다 정신개벽에 좀 더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한다. 교도들로 하여금 정신개벽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고 이를 먼저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개교의 동기에 대하여 이를 신앙심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교도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이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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