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심과 유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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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심과 유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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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1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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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71)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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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일기법」에 유념·무념은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취사하는 주의심을 가지고 한 것은 유념이라 하고, 취사하는 주의심이 없이 한 것은 무념이라 하나니, 처음에는 일이 잘 되었든지 못 되었든지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것으로 번수를 계산하나, 공부가 깊어 가면 일이 잘 되고 못된 것으로 번수를 계산하는 것이요,”라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유념·무념을 해석할 때, 주의심 유무를 살피는 것은 처음단계로 '주의' 공부라면, 일이 잘 되고 못 되는 여부를 살피는 것은 공부가 깊은 단계로 '조행' 공부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는 공부의 처음 단계와 공부가 익어가는 단계를 구분하여, 주의심의 유무를 챙기는 공부는 '주의'라면 일의 성사여부를 살피는 실행공부는 '조행'이라는 것입니다. 주의는 챙기는 마음 위주라면 조행은 일의 실행 위주로 구분하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주의심 유무와 일의 성사 여부도 '주의'공부의 단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의'공부를 '조행'공부의 전 단계로 규정하는 관점은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 공부단계론과 공부방법론
또한, 『정전』「상시훈련법」 '상시응용주의사항'과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의 결구(結句)인 “주의할 것이요”에 '조행'의 의미를 내포하여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도「상시일기법」의 ”처음에는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것”을 위주로 살피는 공부를 '주의'로, 다음 단계로 “공부가 깊어 가면 일이 잘 되고 못 되는” 그 실행여부를 살피는 것을 '조행'이라 보는 시각에 근거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주의와 조행의 관계는 위와 같은 공부의 수준에 따른 공부단계라기 보다는 경계의 당처·당후의 전후에 따른 공부방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즉 '주의'는 경우에 따라 당처(當處)에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에 유념하는 공부라면, '조행'은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행실 가짐으로 당후(事後)에 그 공부를 무시로(수시로, 상시로) 대조(對照)하여 실행에 옮겨 공부의 실효과를 얻게 하는 공부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조(對照)는 모든 일을 처리한
사후(事後)에 그 처리건을 맞대어 비추어 보아 실행이 되었는가 못 되었는가의 유무를 반조하여 실생활에 활용되도록하는 '유무념 대조공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유무념 대조를 체크(조사 기재)하는 것이 '상시일기'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를 당처의 유념공부로 조행을 사후(事後)의 유무념 대조 공부로 해석한다면 '주의'는 '주의'대로 '조행'도 '조행'대로 공부의 영역이 선명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주의-조행의 관계는 공부단계와 경지에 따른 공부이기 보다는 경계 전후에 따른 공부방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처의 '주의'공부는 공부의 초입부터 실행에 옮기는 결과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주의심의밀도와일의성사
당처의 유념공부를 '주의'라 한다면 이 유념공부에도'주의심 유무'와 '일의 성사 여부'의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하는 마음인 주의심은 유념의 초입단계인 것만은 아닙니다. 주의심이 무루 익어야만 일이 잘 성사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되는 가운데 주의심이 익어 있고, 주의심을 챙기는 속에 일의 성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주의심 유무는 일의 성사의 시작이며 일의 성사 여부는 주의심 유무의 성숙인 것입니다. 만일 '주의심'을 '유념'의 초입단계의 공부방법으로만 해석한다면, 『정전』「상시훈련법」의 “주의할 것이요”는 유념의 초입단계의 공부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심은 유념의 초입만이 아니라 유념의 전 과정을 통괄하는 공부입니다. 처음 단계의 주의심 유무로부터 일의 성사(成事) 여부까지의 과정은 주의하는 주의심 밀도의 과정입니다. 일이 잘 성사되었다는 것도 주의심의 밀도가 높다는 것으로, 주의심은 챙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실행의 결과까지를 포괄하는 공부입니다. 유념의 내용이 주의심의 밀도 정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설사 '주의심'을 '주의'공부의 초입과정으로 본다 해도, 일이 잘 되었다는 것도 주의심이 무루 익어 있는 상태로 결국 주의는 주의심이 연장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주의심과 주의는 차원을 달리 할 수 없으며, 주의심은 주의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당후(사후)에 주의심 유무 또는 일의 성사여부를 대조하면 이는 유무념 대조의 '조행'공부인 것입니다. 사후에 주의심 유무 또는 일의 성사여부를 반조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처음에는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주의심 유무'로, 공부가 깊어 가면 일이 잘 되고 못되는 '일의 성사 여부'로 '공부의 단계'를 두게 되는데, 이런 공부의 단계(수준과 경지)를 배경으로 하여, 경계의 당처에는 유념하는 '주의'공부로, 경계 후의 사후에는 유무념을 대조하는 '조행'공부로 단련
하는 것이 포괄적이고 타당한 공부라 할 것입니다. (대종경 수행품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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