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 만난 사람] 나의 정치, 나의 신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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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만난 사람] 나의 정치, 나의 신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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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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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만난 사람

김관도(본명 성곤) 교도와의 인터뷰는

공교롭게 19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고

20대의 문이 열리는 5월 30일(월) 이었다.
야당의 4선 중진에서 이제는 전(前) 국회의원이 된 김교도의

진솔한 인생과 신앙이야기를 한울안이 함께 나눴다. (편집자 주)


만난사람(김성곤).jpg

박대성 편집장(이하 박) : 어느새 선거가 끝나고 20대 국회의 막이 열렸습니다. 시원섭섭 하실 텐데 요즘 기분이 어떠신지요?

김성곤 전 의원(이하 김) : 여의도에 이런 농담이 있어요.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요며칠 실감이 됩니다. 보좌관도 없지, 기사도 없지.(웃음)
낮에는 집안 청소하고 나왔습니다. 아내가 해주는 아침, 점심 먹고 일보고 들어가 저녁까지 얻어먹는 '삼식이'가 되면 간 큰 남자라고 하던데, 졸지에 삼식이가 돼서 좀 미안해요. 앞으로 어떤 직책으로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여유도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 잊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지난 3월 1일 북한산 산상기도 때, 지역구(전남 여수시 갑)에 불출마하고 비례대표를 고려중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선거를 3주 남기고 '강남 갑'으로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45%라는 놀라운 성적을 얻으셨습니다. 야당의 험지임에도 쉽지 않은 결정을 하신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 스승님께서 전화로 포기하지 말고 지역구에 나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당에 연락했더니, 강남 갑에 아무도 출마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 보좌진들은 다 반대했습니다. 나가서 되지도 않을뿐더러, 준비기간도 짧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국회의원 하려고 욕심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또 한 분의 스승님께서 전화하시더니 져도 좋으니 나가라는 거예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스승님 말씀이니 해보자'결정했지요. 보좌관들은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정치는 현실인데, 아무리 그래도 스승이 나가라고 험지에 나가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얘기는 유권자들한테도 언론에도 말할 수 없는 겁니다.(웃음)
처음에 선거 나갔을 때 굉장히 요란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여기는 뭐 하러 나오셨어요. 여기는 안 되는 곳이에요”이러는 겁니다. 끝나고 드는 생각이지만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을 기회가 몇 번 있었어요. 그런데 역시 평소에 삼학공부가 잘 되어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이 요란하니 정확한 판단이 잘 안서는 겁니다. 지나고 생각하니깐 스승님이 저한테 나가라고 하신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던거죠.

: 야당이 이번에 강남 을도 차지했고, 강남 병도 근소한 차이로 선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강남에서 45% 차지했다는 것이 상당한 이변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은 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스승님 말씀과 선당후사(先黨後私)하는 마음으로 선거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낙선했다는 것에 섭섭함과 아쉬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내 책상 앞에 “끝까지 구하면 얻어지고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지고 정성껏 노력하면 반드시 되어지나니”라는 대산종사님 법문이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기도하면 항상 된다고 생각했는데 '기도를 안 들어 주실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어요. 그런데 선거 끝나고 우산 최희공 법사님이 “기도에 어떤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고 저에게 주신 말씀을 들으니 참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좋은 공부를 했어요.

: 주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진산님(김 교도의 법호)도 학생운동(78년 고려대 사학과 졸업)하다가 재적을 당한 경험이 있으시죠? 부친 김상영 선생이 당시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8, 9대 국회의원 역임)이셨는데, 아들의 학생운동 경력으로 공천을 못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벌써 40년 전이네요. 저는 솔직히 열렬한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공화당 정권이 얼마 안가서 무너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님이 정치를 그만두면 내가 그 뒤를 잇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러다가 군대 간 친구대신 보궐 선거로 문과대 학생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장이 되자마자 데모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졸지에 재적까지 당했죠.

어찌 보면 그 일이 나에게 축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왜 살며, 도대체 생명은 어떻게 시작이 되고, 이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과학 공부를 하다가, 답이 생기지 않으니 종교를 통해 보자 싶어서 경동교회에 가서 목사 될 생각으로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모순 때문에 불교쪽을 돌다가 원불교를 알게 된겁니다.

: 원불교라는 신종교를 만나게 된 결정적인 인연은 무엇이었죠?

: 교회를 다니다 그만두고 불교와 유교 공부를 하다가 「창작과 비평」에 '불교유신론과 불교혁신론'이라는 원광대 한기두 교수님(故한정원 교무)의 논문(1976년,「 창작과 비평」11권 1호)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선불교 유신론」을 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조선불교 혁신론」을 쓴 소태산 박중빈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거예요. 그리고 이분이 세운 종교가 원불교라는 걸 알게 되었죠. 사실 우리 할머님 장례가 원불교 식으로 치뤄졌는데 그땐 몰랐어요. 우연히 청소를 하다가 할머니 위패 뒤 교전을 발견하고 다 읽어보니, 딱 마음에 드는 겁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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