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의 사각형, 절대주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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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사각형, 절대주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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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2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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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13-02 ㅣ 정법현 교도(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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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유럽 중심주의에 길들여져 왔다. 유럽 중심주의에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학과 철학에서 유럽 중심주의는 지금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유럽의 근대철학은 '나(I)'를 관계의 중심에 놓았다. 그로인해 사물이나 현상을 대립적으로 분리하여 인식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선과 악, 실상과 허상, 유와 무, 진실과 허위, 적과 아, 음과 양, 흑과 백, 주관과 객관, 주체와 타자, 정신과 물질, 삶과 죽음 등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과연 사물이나 현상이 언제나 대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주체의 자아인 '나'가 나 이외의 것들(타자)과 대립하며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아에 상처가 쌓인다. 유럽 중심주의의 정신분석학과 철학들은 자아에 쌓인 상처에 주목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비대립적 관계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구의 철학은 사물을 미세하게 쪼개면서 그 미세한 조각들마다 '개념'을 부여하는데 철학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쏟았다. 소크라테스 이후로 그들은 언제나 절대주의를 찾고자 노력했다. 플라톤의 절대주의를 이어받아, 절대주의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것은 기독교였다.

1914년, 소태산이 조선의 전라도 오지에서 용맹정진하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세계적인 전쟁이 한창이었다. 전쟁이란 곧 매순간 물질이 개벽되는 시간이기도하다. 하지만 물질이 개벽하면 할수록 인간의 영혼은 더욱 피폐해졌다. 물질의 개벽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해결해왔다. 살상무기의 개발이 곧 물질개벽을 이끌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였다.
“하나님 아버지, 저 악마와도 같은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고 우리 독일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독일군 목사가 참호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같은 시간 프랑스 군의 참호에서 목사가 똑 같은 내용으로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면 젊은 병사들은 상대방의 참호를 향해 기어가며 총을 쏘았고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을 살인해야만 했다. 물질개벽의 결과로 만들어진 전차가 살아있는 젊은이들의 육체를 짓이기며 지나갔다. 이것이 전쟁의 풍경이었다.

이 풍경에 염증을 느낀 화가 중에 몬드리안이 있다. 몬드리안은 “제1차대전이 야기한 허무감과 참상을 불러온 사회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보편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갈망했다.”(김현화, 20세기미술사, 추상미술의 창조와 발전, 한길아트, 1999, 87쪽) 몬드리안은 선이 직각으로 만나는 사각형의 세계를 절대성의 정신으로 삼아 “영원한 세계를 꿈꾸면서 불변의 질서를 추구하였다.”
몬드리안은 온갖 형태로 존재하는 자연이나 사물의 외형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는 자연과 사물의 본질, 즉 체성을 질서정연한 구조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수직과 수평이 직각으로 만나는 영구적이며 본질적인 균형에서 완전한 미를 느낀 몬드리안은 격자문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몬드리안의 사각형은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텅 빈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몬드리안의 격자무늬의 사각형들은 이원론의 산물이었다. “몬드리안 회화에서 수직과 수평의 만남은 남성과 여성, 정신과 물질 등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이원론적 요소들의 만남을 의미”했다.(김현화, 위의 책 84쪽) 몬드리안은 수직과 수평의 대립으로 구성된 사각형이라는 상징에서 사물에 대한 영혼의 절대주의를 추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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