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내왕시 주의사항’과 교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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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 내왕시 주의사항’과 교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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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30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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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74) l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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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종사님은“공부인에게 상시로 수행을 훈련시키기 위하여「상시 응용 주의사항」6조와「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6조를 정하시었습니다. 「교당 내왕시주의사항」은 원래「교무부 내왕시 주의사항」이었습니다. 교무부는 곧 교당으로 가르치는데 힘쓰는 곳이며, 교무는 가르치기에 힘쓰는 역할을 하는 지도인인 것입니다.


'교당'은 가르치는 면을 중심한 개념이라면「정기일기법」의'학원'은 배우는 관점을 중심한 표현입니다. 또한 교무와 지도인이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공부인과 학인은 배우는 입장의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정전』「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에서 는 교당이란 ①상시 응용 주의사항으로 공부하던 중 교당에 오면 그 지낸 일을 공부인 사이에 일일이 문답하며, ②감각된 일이 있으면 그 감각된 바를 보고 하여 지도인의 감정을 얻으며, ③특별히 의심나는 일이 있으면 그 의심된 바 를 제출하여 지도인에게 이해와 깨달음(解悟)을 얻으며, ④예회 날에는 교당에 와서 공부에만 전념하는 공부터입니다. 또한 ⑤선비를 미리 준비하여 정기훈련 에 입선하여 전문 공부하기를 주의하며, ⑥교당에 다녀갈 때에는 소득 유무를 반조하여 실생활에 활용하기를 주의하는 곳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결국, 교당은 지도인을 모시고 법의 훈련을 받는 신앙수행의 장입니다.


2. 그렇다면 교당은 하드웨어의 외형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법을 중심으로한 소프트웨어인가? 사실 교당은 하드웨어이면서 소프트웨어입니다. 인간에게 몸의 측면과 마음의 측면이 중층적 층위를 가지듯 교당도 중층적입니다. 하드웨어가 하층이라면 소프트웨어가 상층이 되는 서로 밀접한 관계이나 그렇다고 상하층이 서로에게 종속되지는 않습니다. 위층은 아래층이라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위층이 아래층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당은 소프트웨어인 법이 중심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진리에 뿌리를 둔 신앙수행의 자기장이 교당인 것입니다. 어떤 적공의 기(氣)가 있는 곳입니다. 법이 있는 자기장에 참예하는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이런 기쁨이 없다면 교당의 아우라는 없게 되는 것으로 교당내왕에 있어 법의 아우라는 핵심입니다.


이처럼 교당내왕에 있어 중심역할을 하는 지도인은 법의 자기장이 솟도록하는 동력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도인은 신앙수행의 훈련을 의한교화자여야 할 것입니다. 지도인은 법의 가이드로 여행 가이드처럼 낙원으로 잘 인도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3. 교당은 유명론인지 아니면 실재론인지? 서양 중세의 오캄이 제기했던 보편자 논쟁이 있습니다. 보편자가 개념일 뿐인지 아니면 실재 리얼리티인지의 논쟁입니다. 영희, 철수 등의 개체(individuals)만 실재하는지? 그 개체를 묶어'사람'이라고 부르는 보편자(universals)가 실재하는 것인지의 논쟁입니다. 보편자 유명론은 실재하는 것은 개인들이고 사람이라는 종(種)은 그 개인들을 합한 개념일 뿐이라 본다면, 보편자 실재론은 개인들과는 별개로 인간이란 종이 보편자로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사회(社會)는 개인들의 합이지만 개인들의 합인 사회는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 나름대로의 실재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논의가 서양교회사에서 '교회론'으로 대두됩니다. 로마의 탄압에 의해 배교했던 사람이 다시 복귀를 요청했을 때 생긴 논쟁으로, 기독교인 들이 모인 것이 교회냐? 아니면 교회가 있어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모인 것이냐? 전자의 입장은 그냥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고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 신자들이 모였을 때 성립되는 이름일 뿐이지만, 후자의 입장은 교회라는 것은 개개 기독교인에 관계없
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재라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어떤 보편자, 교회의 실재가 이 복귀논쟁에서 부각됩니다. 교회를 신을 만나는 창구로 보기 때문에, 오로지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러기 에 교회에서만 그 복귀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금강경』12장에서는 경전이 있는 곳이 바로 부처와 존중제자가 있
는 곳이라 합니다. 이 논지로 보면 어떤건물과 제도 같은 실체보다는 경전과 지도인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면 어떤 조직과 건물은 이름뿐이라는 것입니다.


4. 결론적으로 교당은 개개의 공부인과는 또 다른 층위를 지닌 고유한 역할의 실재입니다. 개개 공부인을 통제하는 보편자는 아니지만 고유한 역할을 지닌 신앙수행의 공공(公共)의 장인 것입니다. 교당은 지도인이 계신 공공처로 지도인과 구전심수(口傳心授)하는 마음의 공간이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장소라 할 것입니다. 교당은 이처럼 중층적입니다. 개인적인 마음의 공간이면 스승과 동지의 인연체인 회상(會上)입니다.
교회론은 교회를 보편자로 즉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회상(會上)론은 깨달음의 장에 참예한 보람과 기쁨입니다. 이회상에 참예함으로써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상은 수행자 개인을 규정하는 교단의 보편자가 아닌 참예함으로써 깨달음이 개화되는 수행 의 기반인 것입니다. 회상은 성가 126장의“새 회상 만난 기쁨”입니다. 교당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의 회상에 근거해야 굳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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